영성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 (10)시부모·처부모의 배려, 며느리·사위의 공경(상)

김문태 교수(힐라리오) 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
입력일 2018-08-28 수정일 2018-08-29 발행일 2018-09-02 제 3110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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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장례에서 죽은 자와 산 자, 삶과 죽음은 하나

‘옛날에 소련과 대련은 상을 잘 치렀다. 삼 일 동안 게을리하지 않고, 석 달 동안 태만히 하지 않고, 일 년 동안 슬퍼하고, 삼 년 동안 근심하였다.’(「격몽요결」 〈상제장〉)

23년 전 진달래가 붉게 피어오르던 봄날, 아버지가 선종했다. 맏상제가 되어 아버지의 시신이 있는 안방에서 조문객을 맞고 위령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염습하고, 입관예절을 했다. 이후 거친 베로 짠 굴건을 쓰고, 상복을 입고 죄인의 심정으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했다. 돌이켜보면 임종부터 안장까지 한순간도 아버지의 곁을 떠나지 않은 셈이었다. 생전의 아버지와 함께 있는 듯해 그 슬픔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올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3년 전에 빙모가 선종했다. 가족들은 병원 영안실에서 조문객을 맞았다. 남자들은 검은색 양복에 베로 짠 완장을 팔에 두르고, 여자들은 검은색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제단에는 국화꽃 장식에 둘러싸인 영정사진만 있었고, 정작 추모의 대상인 빙모는 그 자리에 없었다. 병원 지하 냉동고에 격리돼 있었던 것이다. 영안실 밖을 거닐며 묵주기도를 올리는 것이 오히려 빙모가 가는 길을 곱게 쓸어드린다는 느낌이었다. 세태가 변하고 장례풍습이 달라진 것이다.

고대 신화 주인공들의 죽음은 참으로 극적이었다. 신라 시조인 혁거세는 재위 62년 만에 승천했는데, 7일 만에 사체가 다섯 조각으로 땅에 떨어졌다. 사람들이 놀라 시신을 수습해 한 데 매장하려고 하자 큰 뱀이 나타나 방해했다. 하는 수 없이 시신이 떨어진 다섯 곳에 따로 묘를 만들고 오릉(五陵) 또는 사릉(蛇陵)이라 칭했다. J. 프레이저의 「황금의 가지」에 따르면, 농경 문화권에서 곡신으로 여겨지던 존재는 종종 곡물 파종의 신화적 방식으로 분산 매장됐다. 신화 주인공이 살아있을 때처럼 죽어서도 산 자를 위해 풍요를 보장해주리라는 신념에서 나온 장례방식이었던 것이다.

한편 신라 4대왕이었던 탈해는 재위 23년에 죽어 시신을 소천 언덕에 매장했다. 그러나 훗날 그의 계시로 뼈를 부숴 소상(塑像)을 만들어 궁궐 안에 안치했다. 그 후 다시 통일신라를 수호하는 산신이 거처하는 오악 중의 하나인 토함산에 봉안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시신을 매장한 다음, 일정 기간이 경과한 후 뼈를 부숴 소상을 만들어 궁궐에 안치했다는 점이다. 즉 죽은 자와 산 자가 가까이 머무르며 끊임없이 교류했던 것이다.

이러한 신화 주인공들의 장례는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다섯 달 이상 집안에 안치하던 부여의 풍습, 시신을 집안에 두었다가 삼 년이 지난 뒤 길일을 가려 장사하던 고구려의 풍습, 시신을 가매장했다가 뼈만 추려서 집안에 가족의 뼈가 안치된 곽에 넣던 동옥저의 풍습과도 일맥상통한다. 최근까지 시신을 집 옆에 가매장했다가 산 자의 운기가 좋을 때 뼈만 수습해 정식으로 장례를 치르던 초분(草墳) 풍습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즉 죽음과 더불어 죽은 자와 산 자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산 자의 곁에 머물게 하면서 새로운 통합을 꾀하는 의례를 행했던 것이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살아있을 때처럼 여겼고, 죽은 자는 또 다른 생명으로 재생하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우리의 전통적인 장례에서는 죽은 자와 산 자가 하나였고, 삶과 죽음이 하나였다.

우리의 신앙선조들은 죽음, 심판, 천당, 지옥에 대한 사말교리(四末敎理)를 깊이 묵상했다. 특히 천주존재, 삼위일체, 강생구속과 더불어 천주교의 4대 핵심교리인 상선벌악을 통해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묵상했다. 죽음 이후에 올 개별심판과 최후심판을 염두에 두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온전히 살고자 했던 것이다. ‘보라, 내가 곧 간다. 나의 상도 가져가서 각 사람에게 자기 행실대로 갚아 주겠다.’(묵시 22,12)는 말씀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늘날 사말교리에 대한 믿음은 상당히 약화됐다. 현세에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믿음이 강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사후의 하느님 나라에 대한 지향이 퇴색한 것이다. 이에 따라 죽음 이후에 맞이하게 될 천국과 지복직관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게 됐다. 살아서 맛보는 하느님 나라의 기쁨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가톨릭 가정의 상장의례 역시 산 자와 죽은 자가 부활신앙 안에서 하나가 되리라는 믿음에서 멀어지게 된 것은 아닐까. 또한 죽은 자와 산 자가 기도 안에서 영적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믿음이 약화된 것은 아닐까. 죽음 이후에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맛볼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 부활에 이르는 길이라는 믿음을 되새기게 된다. 장례를 치르며 죽은 자와 산 자, 삶과 죽음을 통합의례로 변모시켰던 우리 선조들의 조화로운 삶의 태도가 교회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김문태 교수(힐라리오) 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