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50) 하느님은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rn
입력일 2018-08-28 수정일 2018-08-28 발행일 2018-09-02 제 311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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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잘 쓰던 스마트폰이, 갑자기 인터넷은 더뎌지고 이유 없이 어딘가에 전화를 하는 등 말썽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배터리는 얼마나 빨리 소모가 되던지! 서비스 센터에 가서 A/S도 받아보고, 새 배터리를 신청해 한 달을 기다려 받아 교체해 보았지만, 처음 샀을 때의 똑똑하고 스마트한 기능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경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었더니, 어떤 분은 2년 넘게 사용했으면 핸드폰을 교체하면 된다, 또 어떤 분은 핸드폰은 소모품이니 기능이 다 할 때까지 계속해서 A/S 받으며 사용하라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사실 핸드폰이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기계라 익숙해져, 쉽사리 다른 핸드폰으로 바꿀 순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1시 심포지엄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어느 본당 특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심포지엄 직전에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 놓았습니다. 오후 6시 즈음에 심포지엄이 끝났고, 8시에 특강을 시작하는 성당을 찾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향해 갔습니다. 그 날 심포지엄 내내 전화나 문자가 한 번도 오지 않아, 혼자 속으로 ‘오늘따라 아무도 나를 찾는 사람이 없네. 이런 때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하철을 탄 후, 성당을 찾으려 핸드폰을 꺼내보니 아뿔싸! 핸드폰이 저절로 꺼져있었습니다. 급히 핸드폰 전원을 켰더니, 특강하는 본당에서 내게 여러 차례 전화를 했었고, ‘문자 확인하면 제발 연락 좀 주세요’라는 내용의 모바일메시지까지 와 있었습니다. 수도원에서도 몇 번 나를 찾는 전화가 왔었고.

서둘러 전화와 문자를 하신 분들에게 자초지종을 밝히고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상황을 수습했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한 후 드디어 핸드폰을 바꾸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이놈의 핸드폰, 스스로 전원이 꺼지는 걸 보니 나와 결별을 하고 싶다는 뜻이군.’

기계가 기능을 다했으니 교체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날 저녁 특강까지 마치고, 피곤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다음 날 아침, 수도원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같은 식탁에 앉은 수사님들과 전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수사님이 내게 말하기를,

“예전에 내가 있던 공동체에서 자판기를 산 적이 있어요. 그리고 몇 달 정도 밖에 사용 안 했는데 자판기가 고장이 난 거예요. 그래서 자판기를 산 회사에다 전화를 해서 어떻게 된 것이냐 물었더니, 무조건 우리 쪽 잘못이라고 고압적으로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한바탕했더니, 직원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자판기를 새로 고쳐 준 적이 있어요.” 그러자 다른 수사님이,

“기계는 고장이 나면 바꿀 수 있지만, 우리 삶이 고장 나거나 망가지면 바꾸기가 참 어려워요.” 문득 이 수사님 말이 가슴에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날 아침, 형제들은 자신들이 구입한 물건들을 갑자기 고장이 났을 때 어떻게 처리했는지의 경험을 나누는데, ‘우리 삶이 고장 나거나…, 망가졌을 때에는….’ 하느님 생각이 났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무상으로 창조하신 후에도, 우리가 불량품 같은 삶을 살고 고장 난 듯한 행동을 해도 참고 기다려주고 계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하느님에게 우리 기도를 왜 들어주지 않느냐고 소리를 치거나, 하느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삿대질을 하거나, 심지어 하느님과의 관계마저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사랑의 하느님은 오늘도 우리를 폐기처분하시지 않으시고 그저 어여삐 보아 주신다는 것을 묵상했습니다. 살면서 나는 내 물건이 제 기능을 못하면 언제든 바꿀 마음을 먹지만, 하느님은 나를 끝까지 사랑으로 기다려 주시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에이…, 찔끔 눈물이 나왔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n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