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재)통합의료진흥원 손건익 이사장

주정아 기자
입력일 2018-08-28 수정일 2018-09-04 발행일 2018-09-02 제 3110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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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절실한 환자 생각한다면 양·한방 협업 활발해져야”
전통 의학과 현대 의학의 협업 미국·유럽 등 전세계서 진행 중
한국은 의료계 갈등으로 ‘난항’ “국내 의료진 의식 개선 필요”
교회 노력으로 통합의료진흥원 출발 지역자치단체·의료기관 등도 협력
‘전인적 돌봄’으로 환자 삶의 질 높여
미국·중국 등과 공동연구도 ‘눈길’ 세계 임상연구 결과 모아 상용화   정부 정책 보완·지원 확대 필요

통합의료는 양방과 한방, 즉 현대의학과 한국 전통의학에 대한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공동 치료와 연구 등을 진행하는 새로운 유형의 의료모델이다. 암과 같은 난치병의 치료율을 높이고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전인적 돌봄’체계로 더욱 관심이 확대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특히 대구광역시와 대구가톨릭대학교의료원, 대구한의대학교의료원이 공동으로 설립한 재단법인 통합의료진흥원은 전인병원을 중심으로 교회와 지역자치단체, 의료전문기관이 힘을 모아 새로운 의료지원을 펼치는 모범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6월엔 세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 인증을 받은 건강보조성분도 개발했다. 또 9월 7일에는 서울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2018 글로벌 임상연구 정상회의–통합의료 : 연구에서 산업화로의 첫길이 열리다’를 주제로 세미나를 마련한다.

이에 앞서 (재)통합의료진흥원 손건익 이사장(스테파노·63)을 만나 통합의료의 현 주소와 전망 등에 관해 들어봤다.

대담: 장병일 편집국장

날짜: 2018년 8월 23일

장소: 대구 전인병원

(재)통합의료진흥원 손건익 이사장은 “난치병 환자들은 어떤 분야의 의술이든 활용해서 도움을 받고 싶어 한다”면서 “의료계는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방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손건익 이사장은 외부 기온이 영하 5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이면 밤을 꼴딱 새기 일쑤였다. 돌봄 1순위는 한데서 자야하는 노숙자들. 서울역으로 영등포역으로 쪽방촌으로…, 곳곳을 돌아보고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직업병’이 남아 있다. 요즘엔 환자들 생각에 뒤척인다. 통합의료 활성화, 보건정책 제안, 의료환경 개선 협력 등 갖가지 일이 산재해 있지만 그 일을 추진하는 원동력은 단순하다. 환자가 가장 약자라는 생각이다. 치유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가장 약한 이들을 가장 먼저 돌보셨다는 것을 매순간 잊지 않는다.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이사장님께서는 의료 산업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제도·정책 등에 관한 뛰어난 전문성을 발휘해 오셨습니다. 구체적으로 30여 년간 복지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로 활동하셨습니다. 재직 중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제정에 힘쓰는 등 많은 일을 해오셨는데요. 소명의식도 남다를 듯 합니다.

▲손건익 이사장(이하 손 이사장): 전문가란 수식어는 늘 부끄럽게 다가옵니다. 저는 많은 부분에서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어서, 모든 일에 그저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3년에 공직에 발을 내디뎌 1988년부터 보건복지부에서 일했는데요. 한국사회가 급속히 발전한 또 다른 시기이기도 했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나 국민연금, 각종 노인복지제도 등 새로운 제도와 정책들을 속속 도입하던 시기라 열정적으로 뛰었던 것 같습니다. 주말에도 거의 쉰 적이 없었는데요, 솔직히 공무원은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살았습니다. 국민들에 대한 서비스가 공무원들의 주 임무이기에, 국민들에게 양보하라 할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먼저 뛰어야 하거든요.

-장 국장: 그러기에 더욱 더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정책이나 의료환경을 바라보면서 고민이 많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한 두 마디로 언급하긴 쉽지 않은 부분이긴 합니다만, 의료 지원 및 환경면에서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가장 심각한 과제와 시급히 개선 혹은 도입해야할 부분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손 이사장: 상대적으로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들이 편하면 환자들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간단한 원리를 종종 잊곤 합니다. 병원에서 누구의 편의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까요? 누가 먼저 양보해야 할까요? 또 한 가지 심각하게 우려되는 부분은 우리나라의 의료 전달 체계가 바르지 않다는 겁니다. 일반의원에서 충분히 진단, 치료할 수 있는 병증들도 대학병원 등의 상급병원에서 치료를 하는 경우가 넘쳐납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많은 전문의가 배출되는 곳은 드뭅니다. 일반 의원 개업을 위해선 전문의 자격까진 필요 없지만, 국민들 사이에선 전문의 자격을 따지 않으면 부족하다는 생각이 만연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다보니 일반 의원이 3차 상급 의료기관과 경쟁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시간과 돈의 낭비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장 국장: 그렇다면 먼저 전문가 교육과 양성 실태를 돌아봐야겠군요.

▲손 이사장: 실제 의료인 양성면에서 문제가 심각합니다. 먼저 각자의 직분에 대해 올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 교육 과정은 여전히 이론 중심인 면이 많고, 윤리·소명 의식 등을 충분히 갖추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되는 사례 또한 비일비재 합니다. 현장에서 재교육을 하긴 더욱 어려운 현실이고요. 결국 환자 중심의 돌봄이 어렵게 됩니다. 정책 면에서도 현재 의료 수가로 적절한 교육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숙고해야 합니다. 미국 조지타운대 의료원을 방문했을 때, 외래 진료로 북적이지 않는 분위기에 좀 놀랐는데요. 꼭 필요한 외래 환자들만 병원을 찾는 시스템이 갖춰져 의료진 교육과 연구, 진료를 균형 맞춰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장 국장: 통합의료 부문에서도 일반인들은 물론 의료 전문가들조차도 잘 모르는 부분 혹은 선입견 등이 있을 듯합니다. ‘의사와 한의사가 함께 진료한다.’ 우리나라 의료 환경에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새로운 유형의 의료서비스에 관해 기대만큼 우려도 컸을 것이고요.

▲손 이사장: 우선 현대의학계와 한의학계의 갈등 폭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입니다.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의 협업이 이렇게까지 잘 이뤄지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유럽과 미주 등지에서도 각 나라의 고유의 전통의학과 현대의학을 접목하려는 노력은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습니다. 중국에선 현대의학보다는 중의학을 높이 평가하지만, 협업이 매우 잘 되고 있습니다. 정책적으로 어떤 증상은 현대의학에서 먼저 치료, 어떤 병은 중의학에서 치료하라는 등의 지침도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엔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을 통합해 외적으로는 전통의학이라는 것이 없지만, 통합된 시스템 안에서 전통의학 치료방법 개선과 약제 연구 등에 엄청난 재원과 인력을 투자해오고 있습니다. 미국만 해도 하버드대 등 유명 대학병원들마다 침요법을 비롯해 동양 전통의학과 심리치료까지 다양한 치료법을 적극 도입,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고 수준의 한의학과 한국의 현대의학이 만났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기대가 되지 않습니까?

(재)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 병원장 손기철 신부와 손건익 이사장, 가톨릭신문 장병일 편집국장(왼쪽부터)이 환담하고 있다.

-장 국장: 통합의료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의료진들의 의식 개선이 가장 시급하겠군요. 우리나라는 우수한 한의학 토양을 갖추고 있고, 동의보감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현대의학 면에서도 전 세계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손 이사장: 맞습니다. 동양에서 가장 체계화된 민족의학이 자리 잡고 있지요. 현대의료계 실력도 뛰어납니다. 하지만 통합의료를 언급하면, 서로가 서로의 영역을 침해한다는 생각을 먼저 내세우는 것이 현실입니다. 통합의료 연구에 참여하려는 의료진이 너무 적은 것은 큰 어려움이지요. 그나마 (재)통합의료진흥원은 대구대교구와 대구가톨릭대학교의료원 등 교회가 공동선을 위해 펼치는 지원과 격려로 시작될 수 있었고 갖가지 성과도 낼 수 있었습니다. 이젠 바꿔서 생각해야 합니다. 환자의 입장에서요. 특히 난치병 환자들은 어떤 분야의 의술이든 활용해서 도움을 받고 싶어 합니다.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슨 방법이든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현대의학은 100여 년 역사 안에서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질병 진단과 검사, 약제 부분은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치료 처치 부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2000여 년 역사의 전통의학이 축적해온 치료 경험치 또한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각 의료계가 나만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 위한 방법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내면적으로도 좀 더 겸손한 입장으로 돌아선다면 현대의학과 전통의학의 협업은 더욱 활발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장 국장: 통합의료 활성화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재)통합의료진흥원 전인병원은 환자 중심의 우수한 진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구가톨릭대학교 의료원과 대구한의대학교 의료원의 공동연구가 중심이 되고 있지요. (재)통합의료진흥원은 미국 조지타운대 의료원, 하버드대 다너파버 암병원-자킴센터, 하버드대 브리검 여성병원-오셔센터, 하버드대 MRCT, 중국 TOP5 병원 등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국내 유일한 기관이기도 한데요.

▲손 이사장: 통합의료 역량을 키우는 면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우선 같은 정보를 바탕으로 세계 각국 병원에서 임상연구를 한 결과를 모아 종합 분석하면 더욱 수준 높고 객관적인 자료들을 쌓을 수 있습니다. 특히 통합의료 전문기관인 전인병원이 재정 면에서 자립해 연구에 체계적인 투자를 하고 그 성과를 통합의료에 적용, 상용화하는 긍정적인 흐름을 이어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FDA 인증처럼 보다 객관적인 성과를 쌓으면서 범의료계의 공감대를 이끌어가는 노력도 지속해야 합니다. 정부도 정책과 법제도 등을 보완하고, 지원을 확대할 수 있도록 고심해주길 바랍니다.

-장 국장: 현재로선 통합의료 활성화의 가장 좋은 방법이 일종의 입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전인병원에 오니 병원 같지 않은 따스한 분위기에 놀라고, 양방·한방 통합 치료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우리나라 통합의료 활성화 면에서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

▲손 이사장: 더 이상 현대의학이 옳다 한의학이 옳다 대립하지 않도록, ‘그런 게 효과가 있겠어?’라는 질문이 나오지 않도록 인식 개선 등에도 꾸준히 힘써 나가야 할 것입니다. 특히 (재)통합의료진흥원에서는 올해를 연구방법을 업그레이드 하는 원년으로 삼겠다는 취지에서 ‘2018 글로벌 임상연구 정상회의–통합의료 : 연구에서 산업화로의 첫길이 열리다’ 마련에 더욱 힘을 실어왔습니다. 세계적인 전문가들이 밝히는 통합의료 연구와 임상연구 수행의 질적인 발전 방안 등에 관해 공유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나아가 우리 모두가 환자들이 없으면 어떤 병원도 존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다시 인식해야 합니다. 통합의료는 환자 중심 의료 서비스의 전형입니다.

■ 손건익 이사장은…

1982년 제26회 행정고시에 합격했으며 영국 런던대에서 행정학 석사, 차의과학대 대학원에서 보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8년부터 보건복지부에서 근무, 연금보험국과 사회복지정책실을 거쳐 국립중앙의료원 사무국장, 보건복지정책혁신단장, 저출산고령화사회정책본부 정책총괄관, 건강정책국 국장, 사회복지정책실 및 보건의료정책실 실장 등으로 활동했다.

2011년부터 3년간 보건복지부 차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제3대 통합의료진흥원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