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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복음살이] 가난한 이들의 주거문제

우세민 기자
입력일 2018-08-28 수정일 2018-08-29 발행일 2018-09-02 제 3110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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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목숨 잃은 쪽방 주민
가난은 여전히 ‘남의 일’인가

집은 인권이다. 인간은 누구나 적절한 주택에서 살 권리가 있다. 2015년 제정된 주거기본법 2조에는 “국민은 물리적·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2018년 9월 현재, 우리나라 국민은 제대로 된 주거권을 보장받고 있는가? 인간의 의식주 문제 중 적어도 집은 가장 가격이 비싸고 문턱이 높은 난제다. 소득불균형이 심해지는 만큼 가난한 이들의 주거권은 더욱 해결하기 힘들어진다. 오늘날 가난한 이들의 주거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거리에서 누워자고 있는 한 노숙인.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 주거빈민의 고통

올 여름 111년 만의 폭염은 특히 주거취약계층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 서울시 동자동, 돈의동 등의 쪽방 주민들은 수은주가 37도까지 올라가도 5㎡(1.5평) 크기 방안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고 보급품으로 나온 생수를 마시며 가만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사망자도 여럿 나왔다. 용산주민센터에 따르면 동자동에서 발생한 변사자 수는 올 여름에만 7명이라고 한다. 특히 거동이 불편하거나 나이가 많으면 폭염에 속수무책이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5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 지역거점병원에서 온열질환자 판정을 받고 사망한 48명만 폭염 사망자로 분류했다. 지난해 8명의 6배에 달하는 수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는 폭염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한여름에서 벗어났지만, 곧 겨울이 찾아온다. 쪽방 주민들로서는 낡은 판자로 동장군을 막기란 불가능하다. 주거빈곤가구 아동 문제도 심각하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 7월 집계한 바에 따르면 지하방, 옥탑방을 비롯해 컨테이너박스, 비닐하우스 등 주택이 아닌 형태의 집에서 사는 19세 이하 아동은 전체의 9.7%인 94만4104명에 달한다. 아이들은 낡은 구조물에 다치기도 하고, 감전 위험을 비롯해 곰팡이 등 비위생적 환경에 노출돼 있다.

현행 주거기본법의 최저주거기준도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없다. 최저주거기준에는 면적, 필요한 방의 수, 부엌과 화장실 등이 명시돼 있을 뿐, 아이들에 대한 구체적 조항이 없고 강제력도 없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기는 했다. 아동이 있는 빈곤가구에 저렴한 공공임대를 우선 공급하고, 소년·소녀가장 등 보호대상 아동에게는 전세임대주택을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내용의 주거복지이행안을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그러나 아직은 첫 단계이므로 위험 앞에 놓인 아이들을 당장 구하지는 못한다.

■ 가난한 이에 대한 가르침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기본 생존권으로서 의식주에 관한 권리를 지닌다고 분명히 밝힌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회칙 「지상의 평화」에서 “모든 인간은 생존, 육신 전체, 생활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한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있으며, 특히 양식, 의복, 주거, 숙식 등에 관한 권리가 있고 의사들의 치료와 그 외 정당한 사회적 봉사 등을 받을 권리가 있다”(11항)고 가르친다.

성경은 루카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노력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는 어려움에 처한 이에게 조건 없는 자비를 베푸는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면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37)라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이들의 생존권이 가진 자들로부터 무력하게 침해당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날,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복음정신을 실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 구성원의 많은 이들은 이것이 ‘남의 일’이라 생각한다.

■ 한국의 빈민사목

한국교회에는 전국 교구 중 서울대교구와 부산교구 두 곳에 빈민사목위원회가 있다. 부산교구는 1994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물만골 공부방’을 만들면서 빈민사목 활동을 본격화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1987년 상계동 철거민과 연대한 것을 계기로 창립됐다. 지난해 30주년을 보내고 올해 40주년을 향해 나아가는 서울 빈민사목위원회는 이제 ‘선교본당’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금호1가동, 무악동, 봉천3동, 삼양동, 장위1동 등 서울 5곳 빈민지역에 선교본당을 세웠다. 선교본당들은 신자·비신자 구분을 떠나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공소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 빈민사목위원회는 특히 쪽방 등에 사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거대책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우리가 당장 이분들에게 좋은 집을 마련해주는 식으로 도울 순 없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다가서고 있다”고 말했다. 주거형태를 선택할 수 없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이웃이 돼 주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라고 나 신부는 강조한다.

“정부 정책도 장애인이나 노숙자 등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모든 이가 각자 처한 상황에서 참된 인간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우리가 촛불을 들었던 당시 마음에도 ‘차별과 배제가 없는 세상’을 향한 염원이 바탕에 깔려 있었죠.”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

“가진 자가 더 가지려 한다면 가난한 이웃이 설 곳은 없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지구, 이 땅은 인류 공동의 소유입니다. 어떻게 몇몇 개인들에게 속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공개념이 많은 분들에게 공감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부유한 사람들이 독점한다면 가난한 이들은 어디에 살며, 어떻게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겠습니까.”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가톨릭신자들부터 인식이 변화된다면 주거빈민 문제 해결이 빨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신자들이 시야를 넓혀 가난한 이들을 실질적으로 돌보는 데 지금이라도 앞장서야 한다고 당부한다.

“우리가 돌봐야 할 이웃이 신자에 국한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이웃사랑’ 계명을 지키려면 가난한 모든 이들에게 이웃 그 자체가 돼줘야 합니다.”

올해 출범 31년을 맞은 빈민사목위원회는 40년을 바라보며 10년의 주제를 ‘이웃이 되어 준 사람’으로 정했다. 빈민사목은 곧 그리스도인들이 기도를 통해 얻은 영적인 힘으로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중요한 사목이라는 것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좋은 구조가 이미 교회에 있잖아요. 구역·반을 중심으로 신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말벗이 돼 주는 것만으로 그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결국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죠. 우리는 그동안 너무 영적인 신앙생활에만 치중해 정작 이웃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요?”

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