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돌탑 위에 얹은 기도 / 한경옥

한경옥(마르가리타) 시인
입력일 2018-08-28 수정일 2018-08-29 발행일 2018-09-02 제 3110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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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군 백담사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절 앞 냇가에 장관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돌탑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 작은 돌멩이 하나하나에 얼마나 막막한 사연들을 담아 얹었을까. 하나의 소원을 더 얹기 위해 알맞은 돌을 찾아 물속까지도 마다하지 않았을 누군가의 애타는 눈동자가, 돌을 올리다가 혹시라도 떨어져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을 누군가의 손길이 돌탑 위에 고스란히 얹혀 있는 것 같아 한 발 떼어놓기가 조심스러워졌다.

기도란 무엇인가. 모든 기도는 ‘나는 당신에게 오롯이 나의 정성을 바치겠다. 대신에 내가 원하는 것을 달라’하는 거래로 볼 수 있다. 미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 힘든 현실 앞에서나 능력 밖의 것이 욕심날 때 나보다 힘이 센 어떤 존재에게 ‘정성’을 담보로 떼를 쓰고 애원하는 것이 기도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기도에 매달리는 배경에는 ‘내 능력으로는 어찌해볼 수가 없기 때문’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우리가 살면서 어찌해볼 수 없는 순간과 맞닥뜨리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족 중 누군가가 병을 앓거나 사고를 당했을 때, 집안에 큰일이 닥쳤을 때 등 안타까워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에 인간은 발을 동동 구르며 신을 향해 구원을 갈망한다. 특히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기도는 막무가내다. 평상시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신에게 갑자기 내 자식을 위해 무언가를 내놓으라고 억지를 부리며 떼를 쓴다.

나도 어릴 적 어머니의 기도하는 모습을 늘 보며 자랐다. 노후에는 하느님 품 안에 드셨지만 7남매를 두신 어머니는 자식의 숫자에 비례해서 찾는 신도 많았다. 때맞춰 절에 가시는 것은 물론이고 스님을 불러 몇 날 며칠 주야로 독경을 하게 한 적도, 무당을 불러 사흘 밤낮으로 굿을 한 적도 있다.

뒤꼍의 장독대에 새벽 첫 두레박으로 뜬 정화수를 올려놓는 것은 하루를 여는 일상이었고 초하루·보름에는 시루떡을 해서 집안 곳곳에 놓아두셨다. 농사일하러 오가는 고단한 걸음걸이에도 잊지 않고 돌탑을 쌓으셨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큰 죄인이라도 되는 양 굽실거리며 두 손을 비비고 절을 하셨다.

그때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부끄럽고 싫었는데 내가 어머니가 되고서야 그 마음이 얼마나 오롯하고 간절한 것이었는지를 알게 됐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자식을 향한 나는 얼마나 무능하고 나약한 존재인가. 열이 펄펄 끓는 아이를 안고서, 시험장에 들어가는 자식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낯선 나라로 떠나는 자식에게 손을 흔들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도뿐이었다. 빌고 또 빌 뿐 그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으랴. 그래서 묵주기도를 하고 108배를 올리고 돌탑을 쌓는 것이다. 기도 중에 잡생각이라도 들어 부정 타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면서….

돌탑들 사이에 앉아 상념에 빠져 있는데 한 여자가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조심스레 걸어오다 나와 부딪혔다. 무척이나 민망해하며 아들의 수능시험을 위해 지난달에 와서 쌓아놓은 돌탑을 찾는 중이란다.

아! 자식을 위해 쌓아놓은 돌탑의 안위까지도 걱정하는 마음이라니….

수많은 돌탑들 사이에 내 것도 세우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고 높게 쌓기 위해 적당한 크기의 돌멩이를 고르면서 점점 경건해지는 마음으로 한 개 한 개 정성 들여 쌓아올렸다.

어디에든 내 기도가 가 닿기를 바라면서.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경옥(마르가리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