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49) 나눔도 타이밍이라!(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8-21 수정일 2018-08-21 발행일 2018-08-26 제 310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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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수도원은 경제적 여건이 넉넉지 못해, 누군가에 의해 선물로 들어오는 과일이 없으면 과일 구경하기가 힘든 곳입니다. 과일이 귀한 수도원에서 과일 구경하기가 힘든 그 시기에 나는 그토록 좋아하는 자두를 선물 받았고, 아침에 하나 점심에 하나 저녁에 하나 이렇게 세 개씩 챙겨 먹었더니, 3일 동안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4일째 되던 날, 문득 이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내가 과일을 좋아하고 특히 자두를 맛있게 먹지만, 이렇게 혼자만 먹으려 냉장고 안쪽에 몰래 숨겨놓고 먹는 꼴을 보니…. 참 구질구질하게 살고 있네.’

그날따라 내 모습이 너무나 구차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나에게 말했습니다.

‘석진아. 혼자서 3일 동안 맛있는 자두를 잘 먹었으니, 이제 소원 풀었지. 그러니 남은 자두는 전부 공동체 형제들과 함께 먹도록 내어놓지 그래. 내일 아침 식사 시간에 자두를 내어 놓으면 참 좋겠다. 형제들 모두가 함께 자두를 먹는 모습, 멋있지 않니?’

그날 저녁에 나는 냉장고에서 남은 자두를 다 꺼내어 씻은 후 예쁜 접시에 담은 다음, 수도회 식당 배식 테이블 위에 몰래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형제들이 이렇게도 맛있는 자두를 먹고 있는 모습을!

그다음 날, 어김없이 일어나 성당에 가서 아침기도와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와 수도복을 갈아입은 후, 맛있는 자두를 형제들과 함께 먹을 생각을 하며 식당으로 내려갔습니다. 형제들은 거의 다 식당에 있었고, 배식 테이블 위에는 아침식사가 가지런히 준비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자두가 놓여 있는 접시를 찾아 두리번두리번! 그런데 순간, ‘아….’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그 전날, 수도원의 은인 되시는 분이 커다란 멜론이 두 개씩 들어있는 상자를 두 박스나 수도원에 보낸 것입니다. 이 더운 날, 수사님들 함께 시원하게 드시라고. 게다가 아침식사를 하는 수사님들은 온통 맛있는 멜론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당시 식탁 위에 놓은 자두의 모습은 처량했습니다. 마치 멜론을 산 사람에게 덤으로 준 과일처럼 말입니다. 그 맛있는 자두는 초라하게, 배식 테이블 한 쪽 귀퉁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습니다. 그날의 자두는 상큼함의 대명사가 아니라, 멜론의 달달함 앞에서 그저 신 과일로만 전락했습니다.

그리고 경리 수사님은 아침식사 중에 멜론을 보낸 분의 소개도 했습니다.

“이 멜론은 ○○○님께서 수사님들 드시라고 보내 주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드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은 감사의 박수를 쳤지만, 나는 속으로 가슴을 치며 원통해 했습니다.

‘아, 내가 저 자두를 어제만 내놓았더라도. 정말 어제 식탁에 놓았더라도, 수사님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을 텐데. 그리고 경리 수사님께서 ‘이 자두는 강석진 수사님의 동창 신부님이 보내주셨습니다’라고 말하면 형제들의 박수까지도 받았을 텐데. 그러면 귀하고 맛있는 자두가 이처럼 맛없는 과일 취급을 받지 않았을 텐데! 나의 욕심과 불찰이 맛있는 자두를 별 볼 일 없는 과일로 만들었구나. 자두야, 정말 미안하다.’

나눈다는 것! 순간의 선택이 주는 소중한 타이밍도 생각해야 합니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은, 그 마음 자체가 놀라울 정도로 소중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나눔의 마음을 가질 때, 그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무언가를 나누어주기만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눔은 정말 타이밍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