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빨래터가 있는 샘물 / 김희선

김희선 (클라라) 수필가
입력일 2018-08-21 수정일 2018-08-21 발행일 2018-08-26 제 310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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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맑은 물이 샘솟는 곳이 많다. 어쩌다 물이 부족한 국가라고 하지만, 산이 많아서 그런지 곳곳에 샘물이 흐른다.

내가 살았던 곳도 서울인데, 뒷동산이 있었고 샘터가 있었다. 그곳에는 맑은 물이 찰찰 넘치는 예쁜 빨래터가 있었다. 자연석의 발그레한 쑥돌은 길이 들어 반질반질하다. 먼먼 옛날, 산지기 할아버지께서 솜씨가 좋았기에 생겨난 빨래터이다. 기다란 암반이 그릇처럼 움푹 파여 있어 커다란 이불빨래도 헹굴 수 있었고, 물이 넘치는 바로 아래엔 동그스름한 작은 방구리처럼 되어있어 맑은 물이 넘쳐흐른다. 어쩌면 적절하게도 그 자리에 자연석 암반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

동네 골목 어귀엔 보통은 300년이 넘는 느티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계곡에선 맑은 물이 소리 내어 흐른다. 무더운 여름도 싱싱한 나무 그늘에 들어서면 시원해서 견딜 만했다. 지붕이 두꺼운 초가집이나 기와집이나 대청마루에서 맞바람 치는 문을 열면 시원함이 있었다. 지금의 콘크리트 지붕보다는 시원했었다. 지금은 에어컨이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집마다 내뿜는 열기에서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생각에, 에어컨을 틀 때마다 마음은 불편하다.

여름방학이면 시원한 느티나무 그늘에서 공기놀이를 했다. 맨땅에 스치는 새끼손가락 끝에서 피가 나도록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다. 공부를 그렇게 했다면 성적에 도움이 되었을 터인데,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공기놀이 또한 알게 모르게 정서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놀이를 통해 심신이 안정되고 친구와의 우정도 나누게 되고, 지금 생각해도 아련하게 아름다운 시절이다. 어린 시절의 정서는 참으로 소중하다. 어린이의 정서를 흑백논리로 깔끔하게 정돈하면, 어른이 되었을 때 쓸모없는 냉혈동물이 될 수도 있다.

요즘은 몹시 무더운 여름이다. 태양이 뜨거워 어디를 간다는 생각 없이 지내고 있지만, 간간이 나들이가 있으면 숨통이 트인다. 여전히 뜨거운 여름, 7월 20일 연꽃을 보러 문인들과 함께 50여 명이 다녀왔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의 궁남지, 연잎의 커다란 잎새 앞에서 마음이 시원하게 넓어지는 느낌이다. 원래의 연꽃단지에서 3분의 2가 없어졌다고 한다. 하기야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꽃에다 종교를 앞세우고, 기독교다, 불교다, 판가름하다 보니 옛것을 무시하는 측면이 있다. 권력이 있거나 강한 자의 취향대로 연꽃은 사라지고 있었다. 유럽의 그림 속에 있는 자그마한 수련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서울 종로 창덕궁, 경복궁, 연못마다 연꽃이 그득하게 피어 있었지만, 대통령의 종교가 기독교라면, 연꽃은 모조리 뽑아내어 햇살에 말려서 버린다. 연꽃이 불교를 상징한다 해서 뽑아버렸다. 물론 세상인심도 시절 따라, 인심 따라, 각각 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면 힘없는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러나 외국에 가 보니 그들은 조상들의 업적으로 관광 사업이 활발하다. 하루 유동인구가 2000만이 넘는 나라도 있다. 조상들의 유산을 함부로 없애지 않는 일도 참으로 부럽다.

연못에 있던 연꽃 몽땅 뽑아버렸다고 하느님께서 진실로 흡족하게 생각하셨을까 궁금하다. 인간의 욕심과 잘못된 판단은 사사건건 참으로 묘하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희선 (클라라)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