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더불어 사는 삶 / 강순아

강순아 (레지나) 동화작가
입력일 2018-07-31 수정일 2018-07-31 발행일 2018-08-05 제 310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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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5일 KBS ‘한국인의 밥상’ 프로그램에 경주 ‘최 부잣집’ 친척 며느리인 김시자(요안나·92) 할머니가 출연했다. 김 할머니는 한국인의 밥상 진행자인 최불암씨에게 최 부잣집의 과객접대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최 부잣집 어른이 살아생전 베푼 과객접대상, 즉 육포와 어포, 사연지와 경주 교동법주를 김 할머니도 정갈하게 차려 내놓으셨다. 김 할머니는 다음날 대구대교구 경주 성동본당 시니어 대학에서 열린 졸업식에 대추차와 떡도 들고 오셨다. 어른들의 축하와 더불어 김 할머니의 베풂은 잔치 분위기를 만들었다.

최 부잣집은 경주 교촌마을에 있다. 경주를 찾아오는 관광객은 최 부잣집에 들러 최 부잣집 얘기를 듣는다. 부잣집을 떠올릴 때 생각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집은 아니지만, 창고는 크다. ‘최 부자’ 어른은 창고 안에 쌓인 수확의 3분의 1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었다. 과객에게 끼니도 잘 대접해줬다. 사흘 치 식량을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함은 최 부잣집 가훈 10개 중 하나였다.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데 언젠가 TV에서 본 아프리카 잠비아의 삼형제 얘기가 생각났다. 아들 셋을 놔두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시로 떠났다. 큰 아들인 13살 샤드릭은 같은 반 60명 아이들 중 1, 2등을 하는 아이였고 꿈은 의사였다. 그러나 샤드릭은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동생 둘의 끼니를 책임져야 했고 동생들이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기 때문이다.

샤드릭이 하는 일은 자기 키보다 몇 배나 큰 나무를 도끼로 찍어 넘어뜨리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면 하루에 세 그루 정도를 도끼로 찍어 넘어뜨리기 때문에 손과 발, 발톱까지 성하지 않았다. 잠비아의 아이들은 거의 온종일 숯을 줍는 일을 했다. 그렇게 한 달 일하고 받는 가격이 한화로 3500원이다.

잠비아는 빅토리아 폭포가 있는 곳이다. 빅토리아 폭포는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다. 아프리카 여행객들은 모두 빅토리아 폭포 앞에서 환성을 지른다. 나도 10년 전 이곳에 다녀왔다. 이슬방울처럼 날리던 폭포 줄기, 선명한 무지개 속을 거닐며 나는 깔깔댔다. 그곳의 아이들이 혼신을 바쳐 땀 흘리고 있는 줄을 그땐 몰랐다.

그 현장을 취재하러 간 리포터가 샤드릭에게 물었다. “숯을 팔아 식량을 사고 동생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어요?”

샤드릭은 아무 말 못 하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 모습 위로 아나운서의 멘트가 떨어진다. “이 세상에 죽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은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천주교엔 ‘카리타스’라는 단체가 있다. 지구 오지에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를 돕는 단체다. 어느 날, 이 일을 하시는 신부님이 단체 후원을 홍보하기 위해 우리 본당에 오셨다. “나는 신부가 되면 남한테 돈 얘기 안 하고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처음엔 성당을 다니며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부끄럽고 싫었습니다. 그러나 오지를 다녀온 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아이들을 굶게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기 후원을 신청했다.

아무리 국민 대부분이 잘 사는 나라라 해도 춥고 배고프고 고통받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들을 챙기는 일도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더불어 사는 삶이리라.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강순아 (레지나)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