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446) 이기적인 거룩함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8-07-31 수정일 2018-07-31 발행일 2018-08-05 제 310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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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인가, 원장 신부님이 나를 부르더니 이스라엘 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꿈속에서는 몇 번을 갔다 왔지만, 직접 가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10박11일’ 일정으로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오라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이냐?’고 물었더니, 원장 신부님은 진짜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시 원장 신부님은 나보다는 선배지만, 워낙 ‘뻥’을 잘 치시는 분이라….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혹시 누구랑 가느냐고! 그러자 원장 신부님은 ‘어느 수녀회 은경축을 맞으신 수녀님들과 성지순례를 갈 것이고, 가서는 매일미사만 잘 드려주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수녀님들과 함께 나는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그때 순례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수녀님들은 평생 한 번뿐인 이스라엘 성지순례라는 생각에 무척 진지하게 순례에 임했습니다. 특히 수녀님들은 순례 오기 1년 전부터 자신들이 찾아갈 순례지와 관련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런 수녀님들의 뜨거운 열정 앞에서 집전하는 순례 미사는 나에게 제일 고역이었습니다. 1년 전부터 복음을 철저히 묵상하신 수녀님들 앞에서 강론하기가…. 또한 수녀님들은 성지에서 미사를 드릴 때면 거의 탈혼 상태에서 미사를 봉헌하시는 듯하여! 암튼 수녀님들 덕분에 나도 덩달아 거룩한 순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순례는 절정의 시간으로 치달았고, 거룩한 마음이 무르익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 일행은 예루살렘에 입성했고, 예수님이 묻히신 돌무덤 성지에 도착했을 때엔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돌무덤에선 잠시 기도하는 시간만 허용됨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하게 긴 줄이 늘어 서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나는 새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1시간 이상 긴 줄을 섰더니 드디어 우리 일행이 들어갈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때 내 모습에 내가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곧 예수님이 묻히신 돌무덤에 들어간다는 설렘만큼이나, 어느 누구도 우리 일행 안으로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고 눈을 부라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기를 안은 엄마, 연세 많으신 노부부, 조금은 편찮아 보이는 형제님 등 그분들이 우리 일행을 애처로운 눈빛, 양보의 눈빛으로 바라보아도 나는 냉정하게 눈을 부라리고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돌무덤 안으로 들어가자, 나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순례자의 마음으로 돌무덤에 손을 얹은 후 하고 싶은 기도를 재빠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순례 객들에게 밀려 무덤 밖으로 나왔고, 순례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 다음 순례 중인 일행 수녀님들을 기다리는데 아기를 안은 엄마, 연세 많으신 노부부, 조금은 편찮아 보이는 형제님 등이 누군가의 양보 덕분에 나와 비슷한 시간에 순례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긴 줄을 보자, 새치기 하고 싶어 안달이 나다가, 순례할 내 차례가 오자 누가 새치기를 할까 봐 도끼눈을 떴던 나인데! 그러다 보니 그분들을 애써 외면했었는데!’ 마음속으로 들려오는 아련한 양심의 울림은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석진아, 너는 이번 순례에 왜 왔니? 나를 만나러 온 거니, 아니면 남들이 성지순례가 좋다고 해서 그냥 온 거니? 석진아, 지금 네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거니?’

분명한 것은 준비된 순례와 준비되지 않는 순례는 평소의 행동이나 마음가짐에서부터 차이가 납니다. 또한 우리 주님의 마음을 닮으려는 순례자와 남들이 ‘좋다, 좋다’해서 따라나선 순례자의 모습은 반드시 티가 나고 표시가 납니다. ‘마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마음 밖에서도 줄줄 샌다’는 것은 정말 진리인 듯합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