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뜨거운 형제자매들

권세희 기자
입력일 2018-07-24 수정일 2018-07-25 발행일 2018-07-29 제 3105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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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땀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가 보여준 사랑을 몸소 실천하며 신앙인으로서 값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봤다.

■ ‘구조 현장의 뜨거운 땀’ 소방관 이광영씨

“불길 속으로 뛰어들땐 두려움도…

그래도 생명 구하는 일은 저의 소명”

소방관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방화복, 뜨거운 화염, 자욱한 연기…. 숨도 쉬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다.

폭염이 강타하는 여름, 그들이 견뎌야 하는 구조 활동의 어려움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다. 가만히 서 있기도 어려운 날씨에 무섭게 타오르는 화염 속으로 무거운 장비를 이끌고 들어선다. 암흑같이 어두운 현장에서 그들은 사명감 하나로 구조자를 찾기 위해 나아간다. 누군가를 구하러 들어선 구조 현장에서 사고로 부상을 입거나 목숨을 잃는 이들도 적지 않다.

7월 19일 서울 용산소방서에서 만난 이광영 소방관. 이 소방관은 “한 치 앞도 안보이는 구조 현장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면 성호를 긋고 주님께 도움을 청한다”고 말한다.

소방관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로 불길보다 더 뜨거운 땀을 흘리며 일한다. 이광영(아폴리나리스·51·서울 아현동본당) 소방관 역시 마찬가지다. 27년 차 소방관인 그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현장을 누볐다.

현재 서울 용산소방서 재난관리과 구급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소방관이라는 것을 단순히 직업이라고만 생각하면 일을 하기 어렵다”며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라고 생각할 때 일에 몰두할 수 있다”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평생 한 번 볼까 말까 한 일을 찾아다니는 직업이라 힘든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처음에 일을 시작하면서 사고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게 어찌나 힘들었는지….”

이 소방관은 그러던 어느 날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깨끗한 모습으로 보이는 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아가라는 주님의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며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가 다르듯이 저에게는 다른 사람을 구하는 능력을 주셨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순간들도 되짚었다. 구조대가 닿기 전 잘못된 응급처치로 손자를 잃은 할머니의 모습, 만삭 임산부가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은 일, 그리고 함께 동고동락했던 직장 동료를 볼 수 없게 된 사건 등 견디기 힘든 순간들도 많았다.

“화재현장에 나갈 때 방화복을 입으면서 신고 있던 신발을 벗습니다. 사고를 수습한 후 돌아와서 벗어놓은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 때 그때서야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안도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가 늘 죽음과 삶의 경계를 앞다투는 소방관이라는 일을 이어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생명을 살리는 숭고함’과 ‘신앙의 힘’이다.

“한 치 앞도 안보이는 구조 현장에서 손을 더듬어가며 구조자를 찾을 때, 그 때 생각나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뿐입니다. 물론 두려울 때도 있지요. 그럴 때면 성호를 긋고 주님께 도와달라고 청합니다.”

‘주님, 도와주소서.’ 이 소방관은 이 말을 할 때면 없던 힘도 생겨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에게 신앙은 소방관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그의 삶을 지탱하는 지팡이와 같다고 말했다. 30년 가까이 자기 일에 진심으로 종사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본 그의 딸도 같은 소방관의 길을 걷고자 준비하고 있다. 이 소방관은 오랜 기간 동안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절실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무거운 땀방울을 흘려왔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점, 그리고 구조된 사람들이 다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이 소방관들에겐 큰 힘이 된다”는 이 소방관. 이웃을 위한 그의 땀방울은 앞으로도 식지 않을 것이다.

■ ‘가스불 앞 사랑의 땀’ 무료급식 봉사자 이보옥씨

“쪽방촌 돌며 도시락 나눌 때 가난하고 굶주린 주님과 만나요”

“저는 그냥 보조 역할이에요. 하느님이 허락하셔서 봉사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뜨거운 여름, 가스불 앞에서 땀흘리며 이웃들을 위한 조리 봉사를 하는 이보옥(리오바·60·서울 방배동본당)씨는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5명의 봉사자가 150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날. 7월 18일 서울 동자동에 위치한 서울대교구 단중독사목위원회(위원장 허근 신부) 소속 가톨릭사랑평화의집(소장 김남훈)에서 만난 봉사자들은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에 분주해 보였다. 그 틈에서 이씨도 채소들을 다듬으며 사뭇 진지한 얼굴이었다. 간혹 오가는 말에 미소를 띠며 척척 해야 할 일을 해치우는 모습에서 ‘봉사 베테랑’의 태가 났다.

이웃을 위해 봉사에 팔을 걷어붙인 이씨는 다니던 직장을 퇴직한 후 2014년부터 가톨릭사랑평화의집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보통 조리와 배달로 나눠 봉사를 진행하는데 이씨는 조리와 배달을 모두 하는 봉사자 중 하나다.

7월 18일 서울 동자동 가톨릭사랑평화의집에서 봉사자 이보옥씨가 노숙인들을 위한 도시락에 밥을 담고 있다.

그가 봉사하고 있는 가톨릭사랑평화의집은 2014년 12월 개소해 서울역 근방에서 도움이 필요한 노숙인들과 쪽방촌 거주자들에게 도시락 제공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운용하고 있는 기관이다. 이 곳에서 돕고 있는 노숙인들은 약 320명. 챙겨야 하는 노숙인들에 비해 봉사자의 수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씨는 일주일간 월·수·금요일 3회 진행하는 봉사중, 주당 2회 이상 잦은 빈도로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것이 많으니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갚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어려운 분들을 돕고 싶어 둘러보다 이곳에 오게 됐지요. 처음에는 배달 봉사로 시작했는데, 일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조리 봉사까지 하고 있습니다.”

봉사의 계기를 밝힌 이씨는 더운 김이 피어오르는 밥을 도시락에 가득 눌러 담으면서 땀을 훔쳤다. 숙련된 봉사자 같은 모습을 보이는 그도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특히 한여름이나,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봉사하기 녹록지 않았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찬 쪽방촌에 가면 곰팡이 냄새 같은 것이 날 때도 많았어요. 먹을 것도 잘 챙겨 먹지 못하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사람들이 처음에는 낯설고 대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더운 여름 도시락을 받는 사람들의 눈을 보면 아직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씨는 “봉사도 하느님이 기회를 주시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들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봉사는 그에게 마치 끊을 수 없는 ‘중독’과 같다. 몸이 아파서 나오지 못할 때면 늘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몸이 좋지 않을 때도 이곳에 와서 봉사하면 통증이 사라지는 것 같다는 이씨의 모습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깊은 애정이 느껴졌다.

무더운 날씨에도 이웃을 위해 흘리는 땀방울의 값짐을 체험하고 있는 그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 봉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누구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봉사할 수 있습니다. 또 봉사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생각지 못한 더 소중한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