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전통 가정과 가톨릭 가정] (3) 부부의 사랑 (하)

김문태 교수(힐라리오) 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
입력일 2018-07-10 수정일 2018-07-11 발행일 2018-07-15 제 3103호 1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남편은 아내 하기 나름, 아내 역시 남편 하기 나름
긍정적인 부부 관계 위해선 신뢰가 최우선
새 생명 탄생시키며 하느님 창조사업 동참

인간은 관계적 존재이며, 부부 역시 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곧 인간이 상대적인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어진 부인은 남편을 귀하게 하고, 간악한 아내는 남편을 천하게 한다’(「명심보감」 ‘부행편’)는 말이 있다. 남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내가 변하듯이 아내의 태도에 따라 남편의 위상도 달라지는 것이다. 어지거나 악한 아내는 남편에게 그렇게 대할 것이고, 그 영향으로 자연히 남편이 귀하거나 천박하게 된다. 남편은 아내의 태도에 따라 응대할 것이고, 주위 사람들 역시 그런 아내의 태도를 보며 그 남편을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치는 입장을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부부는 협력자의 관계다. 가정의 대소사를 서로 의논하여 원만하게 해결하는 한편, 상대방의 단점과 결점을 메워주는 상생의 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부부는 함께 도를 닦는 벗인 도반과 같다. 그래서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 모양이다. 함께 한 공간에서 지내다 보니 식성과 차림새가 비슷해지고, 심지어 생각과 말과 행위마저 닮아간다. 결혼하여 함께 오래 산 부부를 마치 오누이와 같다고 하는 말이 그르지 않다. 부부는 같은 향기와 냄새를 뿜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말이다.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던 때의 일이 이와 다르지 않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창세 2,18-24)

아담과 하와는 협력자의 관계로 세상에 태어났다. 우월적이고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대등한 존재로 이 땅에 섰던 것이다.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남편은 아내가 하기 나름이고, 아내 역시 남편이 하기 나름이다. 서로 기대고 사는 부부는 상대방의 태도에 따라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변화해가는 것이다.

부부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배우자에 대한 신뢰가 우선이다. 상대방을 믿을 수 있을 때 진심으로 사랑할 수도 있고, 공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부간의 신뢰가 깨지는 순간, 공연히 상대방을 의심하고 증오하는 병리적 현상에 빠지게 된다. 그런 상태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공경은커녕 더 이상의 애정도 있을 수 없다. 부부의 협력과 신뢰는 혼인 불가해소성(마태 19,5-6)의 전제 조건이 된다.

부부는 정신적인 교감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 사랑을 나눈다. 그러므로 자녀는 부부 사랑의 결실이다. 부부는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한다. 부부의 사랑만큼이나 자녀출산이 중요한 까닭이다. 부부에게 있어서 자녀의 위상은 태교에서 잘 드러난다. 태교는 산모가 태아에게 좋은 감화를 주기 위해 행실을 바르게 하는 일이다. 속설에 태어날 아기의 피부가 닭살처럼 될까 우려해서 닭고기를 먹지 않고,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붙어 태어날까 걱정해서 오리고기를 먹지 않는단다. 이처럼 유사한 행위가 유사한 결과를 부른다는 유감주술적인 발상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생각도 장차 태어날 아기에 대한 애정 앞에서는 당당하기만 하다. 태임의 태교가 눈길을 끈다.

‘태임은 문왕의 어머니이다. 임신을 한 뒤에는 눈으로 악한 빛을 보지 않고, 귀로 음란한 소리를 듣지 않고, 입으로 오만한 말을 내지 않았다. 옛날에는 부인이 아이를 임신하면, 몸을 기울여 자지 않으며, 가장자리에 앉지 않으며, 비뚤게 서지 않으며, 사특한 맛을 먹지 않으며, 반듯하게 자르지 않으면 먹지 않으며,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자식의 형용이 단정하고 재주가 남보다 뛰어나게 된다.’(「삼강행실도」 ‘열녀’)

진정한 태교는 부부가 바르게 생활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선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선한 사람을 만나 정당한 일에 대해 대화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태아가 그 영향을 받아 바른 성품을 지니고 태어나게 된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처럼 순수하고 흠 없는, 단정하고 총명한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다.

오늘의 현실은 어떠한가. 혼인과 출산은 저하되는 반면 이혼과 낙태는 증가하고 있다. 날이 갈수록 혼인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정을 꾸렸다 하더라도 자녀를 낳지 않겠다는 추세다. 부부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조력자라는 사실이 무색해진다.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되새겨볼 대목이다. ‘혼인제도 자체와 부부 사랑은 그 본질적 특성으로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하며, 그로써 마치 절정에 이르러 월계관을 쓰는 것과 같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52항)는 교회의 가르침이 오늘도 새롭다.

김문태 교수(힐라리오) rn서울디지털대학교 교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