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마당

[독자마당] 성경과 준주성범 필사를 마치면서

박상열(아시시의 프란치스코?수원교구 용인 상하성모세본당)
입력일 2018-07-03 수정일 2018-07-03 발행일 2018-07-08 제 310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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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2월 지존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영세한 신자입니다. 성장기에는 유교가정에서 생활했으며 인의예지신의 유교 덕목을 엄격히 받아왔으며 지천명에 이르러 신앙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던 중, 서울에 사는 중학교 동창인 사제를 찾아가서 상담하고 천주교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외부의 입교권면 없이 단독으로 결정한 것이었지요. 레지오 마리애 20년, 순교 영성・박해사를 연구 성찰하면서 영세 3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국내의 여러 성지를 순례하면서 감동이 축적된 가운데 문득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필사해 보자는 욕구가 생겨 2017년 11월 1일부터 시작, 17개월간의 시간 동안 성경을 하루 3~5시간에 걸쳐 필사했습니다. 필사 시작 후 한 달이 지나면서 체력변화가 나타났습니다. 눈이 충혈되고, 손가락이 저리고, 허리 좌우로 통증이 누적되어 힘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필사를 하기 전, 하느님께 서약을 했기에 정성을 모아 봉헌하겠다는 일념으로, 성체조배 드리는 심정으로 차분하게 감내하면서 하루하루를 채워나가게 되었습니다. 필체를 규격화된 크기로 써야 하는데 손가락 류마티스 증상으로 인해 난필로 필사가 되어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기도 했습니다. 믿음은 오직 실천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자로서 내적・외적 봉사활동이 다양하지만, 성경필사야말로 쓰고 읽고 외우고 묵상하고 바라봄의 관상의 영역으로 심취하는 시간…, 그런 지고지순의 경지에서 하느님을 바라보게 되는 영안을 터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창세기에서 요한묵시록까지 필사하면서 경건한 묵상과 지혜의 심오함에서 생명나무와 십자가나무를 발견하는 오묘한 분별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생활과 미사 참례에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 창조주와 구세주를 흠숭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글자, 한 구절 필사하노라면 하느님의 숨결이 호흡 속에서 들리듯이 명경지수의 감동이 침잠의 물결 속에 잠기어 있는 기분입니다.

또한 성경에 이어서 추가로 「준주성범」을 필사하게 되어 한층 고조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등장한 약 2000여 명의 신앙선조님들, 부디 천상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드립니다. 생각건대 성경필사의 핵심은 무형의 가치를 향하여 유형의 형상가치를 구현, 일체화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이란 불안이라는 열차를 타고 절망이라는 터널을 지나서 죽음의 종착역에 이르는 실존”이라는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말을 되돌아봅니다. 자신의 지나온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삶의 죄의식에서 유리되어 통회하는 향심이 내재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박상열(아시시의 프란치스코?수원교구 용인 상하성모세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