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더 중요한 것 / 서영준 신부

서영준 신부(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
입력일 2018-06-26 수정일 2018-06-27 발행일 2018-07-01 제 3101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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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평일 어느 하루의 아침, 오랜만에 부지런히 아침 운동을 하고 난 후 아침 8시 미사 전 여유롭게 복음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성당에 앉아 있다가 졸음이 몰려와 학교 운동장을 돌며 그날 복음 내용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위 성경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 안에서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고 바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는데 문득 성모님을 떠올리게 됐다. 은총이 가득하신 분, 평생 동정이신 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 등 성모님 앞에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데 이러한 수식어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고 있는 의미가 있음을 생각해 본다.

은총이 가득하기 이전에 그 은총이 가득할 수 있도록 무언가 채워져 있어서는 안 된다. 성모님이 은총이 가득하신 분일 수 있는 건 은총을 가득 채울 수 있도록 자신을 비웠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은총을 가득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상태, 그래서 은총이 가득하신 분일 수 있었고 그런 그분의 준비 상태를 교회는 원죄 없으심과 평생 동정의 의미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무엇을 바라고 청하기 전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것. 결국 성모님처럼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자 하시는 분의 뜻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이다. 헛된 바람이나 그릇된 욕심 등 우리 안에 다른 무엇이 채워져 있다면 그만큼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안에 자리할 수 없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님의 기도를 통해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지고 채워지길 바라는 의미보다 이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너무도 잘 아시는 그분의 뜻이 이루어지고 그분이 주시고자 하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그러한 받아들임의 의미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하는 것들이 우리를 채우고 있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유혹에 빠지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한 그분의 지향과 바람이 실현될 때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아들일 수 있기에 그것을 받아들인 나 자신이 완전해지고, 그러기에 그분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는 분명 우리가 완전해질 수 있도록 하는 의미의 기도일 것이다.

내가 바라고 희망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일까? 순간마다 생겨나는 바람과 희망도 있고, 지속적으로 미래 지향적 차원에서 바라는 것들도 있다. 그 가운데 우선 순간순간 바라고 희망하는 부분들 안에서 그 차원에 잠겨 있기 보다는 그러한 차원을 넘어 내가 진정 올바른 것을 바라고 희망하는가를 생각할 줄 알며, 그 자체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기보다 나보다 더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는 내가 되길 희망해본다.

서영준 신부(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