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30) 뿔이 부러진 산양

박그림(아우구스티노) 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
입력일 2018-06-26 수정일 2018-06-26 발행일 2018-07-01 제 3101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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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무튀튀한 얼굴에 한쪽 뿔이 부러진 수컷 산양이 무인카메라에 찍혔다. 여기는 내 땅이라고 말하는 듯한 위엄 있는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부러진 뿔을 달고 있었다.

부러진 뿔을 달고 살아왔을 날들이 결코 평탄치 않았음은 얼굴에서도 드러나는 듯했고 암컷을 차지하려는 싸움에서 뿔이 부러져 쫓기다시피 물러섰을 수컷의 꺾인 고개가 보이는 듯했다. 자신의 삶터를 부지런히 돌면서 나무에 표시를 남기는 것조차 쉽지 않았을 수컷의 고단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온전하게 남은 한쪽 뿔에 남겨진 세월의 무늬가 나이가 많은 늙은 산양임을 알아보게 했을 때 스스로의 삶터를 지키며 가족을 거느리고 살아왔을 수컷 산양의 삶이 가슴 아리게 다가왔다. 그러나 산양들도 힘들고 어려운 이웃과 서로 도우며 사는 세상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커다란 위안을 삼는다.

우리들은 못된 일을 저지른 사람을 짐승 같다고 하지만 그들의 세상이야말로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삶이지 않은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짝 짓고 새끼 낳아 기르며 나이 들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이 아닌가. 못된 사람처럼 탐욕으로 뭉쳐진 일그러진 삶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면 짐승을 욕할 만큼 우리가 잘난 것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산양의 흔적을 찾아 산에 갈 때면 늘 느끼는 일이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산양이 다니는 길조차도 산줄기의 흐름에 따라 휘돌아가며 큰 힘 들이지 않고 나아가는 길이었고 먹이조차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 먹으며 삶의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는 생태적인 삶이다. 주검조차 배고픈 다른 짐승들에게 보시하는 삶에 비춘다면 우리들의 삶은 어떨까?

산양지킴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산양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다보니 그렇게 보인 듯해서 부끄럽기도 하고 지킴이라는 말이 올바른 것인지 묻게 된다. 어떻게 산양을 지킬 수 있다는 말인가? 다만 산양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간섭을 줄여주는 일을 할 뿐이다.

산양들의 삶터에 마구 드나들지 않는 것만으로도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의 탐욕은 끝없이 산양의 삶터를 위협하고 함부로 하려 덤비고 있다. 야생동물이 겨우 몸 붙여 살아가는 작은 땅조차 우리들의 욕심으로 사라지고 있다. 서식지 파괴로 사라져가는 뭇 생명에 대한 배려는 결국 우리들의 삶을 위한 일인데도 말이다.

뿔이 부러진 산양의 삶을 생각하며 산양 가족이 오래도록 우리와 더불어 설악산에서 살아갈 수 있기를 빌 뿐이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 녹색연합·‘설악산국립공원 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