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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제5회 그리스도인 동북아 화해 포럼을 다녀오다 (하)

일본 교토 정다빈 기자
입력일 2018-06-11 수정일 2018-06-12 발행일 2018-06-17 제 3099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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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드는 민족주의… 국가간 갈등의 해결은 평화뿐

“평화와 번영의 장밋빛 이상이 깨지면 ‘오래된 유령’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민족주의, 국민국가 간의 경쟁, 지정학적 갈등이다.”

미래학자 조지 프리드먼 박사는 미국발 세계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을 기점으로 민족주의라는 ‘오래된 유령’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를 기반으로 하는 ‘회고적 민족주의’는 세계적 현상이다. 민족과 국가의 이익이 무엇보다 우선시되고 이런 흐름이 ‘애국심’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때,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5월 28일~6월 2일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5회 ‘그리스도인 동북아 화해 포럼’(The 5th Annual Christian Forum for Reconciliation in Northeast Asia)은 민족주의가 다시 부상하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마주한 위기와 기회는 무엇인지 되짚는 시간이었다.

■ 민족주의, 아시아교회의 위기이자 기회

5월 29일 오후 교토 도시샤 대학교에서 ‘아시아의 교회가 직면한 도전’을 주제로 열린 스탠리 하우어워스 박사의 공개 강연은 이번 포럼의 주제를 집약했다. 동북아시아 지역 민족주의 발흥을 교회는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에 대해 다룬 강연에는 포럼 참가자 외에도 일본 전역에서 온 신학자와 그리스도인 200여 명이 참여했다.

하우어워스 박사는 “과거사가 남긴 상처들이 살아 있는 아시아 지역에서 교회가 각 나라의 민족주의 발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는 어려운 문제”라며 “이 상처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되고 연합하는 아시아 교회 공통의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지역성이 만들어낸 차이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최소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한국, 일본, 중국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이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느님을 섬기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가운데 하나되는 것은 아시아교회가 마주한 큰 도전인 동시에 위대한 기회”라고 본 것이다.

하우어워스 박사의 강연에 이어 이뤄진 토론에는 한국, 중국, 일본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참여했다.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 시리안 교수는 “민족주의가 야만을 부추길 때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면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가 활발한 한국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숭실대학교 철학과 김선욱 교수 또한 “평화를 위한 노력은 차이를 이해하는 데 초점이 있다”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평화를 위한 새로운 언어,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5월 29일 일본 교토 도시샤 대학교 도시샤 채플에서 열린 스탠리 하우어워스 박사의 공개 강연에는 포럼 참가자뿐 아니라 일본 전역에서 온 신학자와 그리스도인 200여 명이 참석했다.

■ 화해영성을 통해 돌아본 한반도 평화

포럼이 진행되는 기간에도 몇 번이고 새로운 소식이 전해진 급변하는 남북관계는 이번 포럼에서도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다. 많은 참가자들이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한반도 정세 변화가 “하느님의 선물처럼 느껴진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들조차 길고 지난한 화해의 여정을 기다리지 못하고 평화의 결과물만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봤다.

5월 31일 오후 도시샤 대학교 리트리트센터에서 열린 워크숍 중에는 ‘급변하는 한반도 상황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져주는 의미와 교회의 역할’을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진행됐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의 정치적 의미’를 주제로 한반도 정세를 분석한 한동대학교 법학과 이국운 교수는 “현재 추진되는 종전선언이 전쟁을 상징적으로 끝내는 시도는 아닌지 돌아볼 때”라며 “전쟁 책임의 문제를 묻는 ‘정의를 위한 질문’을 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민족주의의 열망이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는 가운데 현실과 정의, 평화의 문제는 서로 부딪히게 될 것”이라며 “남북 화해의 과정은 생각보다 더 고통스럽고 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신학연구소 황경훈(바오로) 소장은 한국교회를 대표해 ‘현재의 한반도 위기와 기회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대응’을 주제로 발표했다. 황 소장은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교회 역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며 “한국의 가톨릭교회 또한 분단의 갈등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성찰했다. 또한 “아직 평화를 위한 교회 차원의 노력이나 목소리가 부족하지만 앞으로는 단순히 물적 지원을 통해 자선을 베푸는 것을 넘어 사회적 위로를 건네는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리스도인의 역할과 의무’를 주제로 이어진 토론에서 포럼 의장 크리스 라이스 목사는 “역사가 남긴 폭력의 고통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화해를 이루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이들이 많아질 때 화해를 향한 여정은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 화해센터 소장 에드가르도 콜론메릭 교수 역시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서 모인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전하기 위한 평화의 증인으로 모인 것”이라며 화해의 정신을 전하는 데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일본 교토 정다빈 기자 melani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