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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평화 정착의 입구에 서서 / 이원영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입력일 2018-06-11 수정일 2018-06-12 발행일 2018-06-17 제 309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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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북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한반도 정세는 본격적인 방향 전환을 시작하고 있다. 즉 이제 방향 전환의 입구에 들어선 것이다. 방향 전환의 입구가 한반도 비핵화라면, 그 출구는 한반도 평화체제의 정착이 돼야 할 것이다. 입구의 문을 여는 과정이 험난했듯이 입구에서 출구에 이르는 과정 역시 험난할 것이다. 입구에서 논의되고 있는 종전선언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국제법적 협약이 아니라 불가침 선언과 비슷한 의미의 정치적 선언이다. 그런데 지난 1991년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제1조에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제4조에서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하며, 제9조에서 ‘상대방에 대해 무력으로 침략하지 않는다’는 천명을 했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이 합의는 이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따라서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한반도 평화 정착으로 나아가기 위해 중요한 요소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먼저 합의한 당사자 간의 신뢰가 중요하다. 합의한 국가들 내부에서 합의를 반대하거나 불만을 갖는 집단들이 당연히 존재하고 있다. 우리와 미국 내에서 보수세력들이 이미 불만 혹은 불안을 표현하고 있으며, 북한 내에서도 군부의 일부가 비핵화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기 내부 반대와 불만에 대한 설득 여부가 합의를 지켜나감에 있어 매우 중요하며, 이 과정에서 합의 당사자들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때문에 국내 정치용 정치적 수사들과 합의를 지키려는 진심을 적절하게 구별할 수 있는 당사자들 간의 신뢰가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국제정치적 리더십 역시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동북아 국제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문제라면 중국, 일본, 러시아 역시 자국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개입하고자 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현 동북아 국제정치 질서의 현상 변경이며, 이 과정에서 이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이 침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으며, 따라서 경우에 따라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방해하는 세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이 오바마 정부 이후 중국에 대한 ‘재균형’(rebalancing)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과정에서 남북 간의 협력 관계가 얼마나 공고하게 이뤄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 향후 동북아시아 국제정치 질서 형성에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국제정치 질서를 바꾸는 ‘평화만들기’(peace making)를 하고 있으며, 이후 ‘평화지키기’(peace keeping)에 도전하려는 입구에 서있는 것이다. 어렵고 험난할 이 길에서 ‘내가 네 힘이 되어 주겠다’(탈출 3,12)는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할 때다.

이원영 (프란치스코)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