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성서해설] 92. 예레미야서 4 / 김혜자 수녀

김혜자 수녀ㆍ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입력일 2018-06-08 수정일 2018-06-08 발행일 1985-12-15 제 1485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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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을 네입에 담아준다”
출생전 예언자로 점지된 예레미야
2, 항목해설

제一부 1~25, 14: 자기동포를 향하여 심판을 경고하는 예레미야가 등장한다.

예언자의 소명으로 시작되는 1장에서 우리는 이사야와는 다른 소명 사화를 접하게 된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현존에 부딪쳐 이사야처럼 공포로 떨지않고 오히려 철부지「아이」라고 핑계대는데 여기서 독자들은 예레미야가 하느님과의 대면이 처음이 아니라는 강한 인상을 받게된다. 이는 아마도 예레미야가 이미 기도에 심취한 신비가였다는 것을 전제한듯 하다.

5~10절에서「만백성을 위한」예언자의 사명이 드러나는데 그는 소명을 받고 질겁을 하면서 사양하지만 하느님은 이미 그가 세상에 있기 전에 점지하였으며 항상 그와 함께 하신다는 위무까지 곁들여 그로 하여금 소명을 받아들이게 한다.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 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 뽑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고 멸하기도 하고 심기도 하여라』(10절)는 속에서 예언서 전체를 요약하면서 그의 사명을 암시하고 있다.

11~13절과 14~16절의 두 환시에 이어 그의 소명을 완성하는 가운데 예언자의 서품을 해설하고 있다.(17~19절). 앞으로 그의 예언활동이 성공리에 끝나지 않을것이라는 예고와 동시에 그를 뽑으신분이 항상 그와 함께 있으리라는 담보가 제시되어 그의 활동에는 언제나 하느님의 개입과 결과가 따르리라 한다.

이상으로 본 예레미야의 소명사화는 마치 임금님의 즉위식 같은 인상을 주는데 여기에 나타난 특징중 첫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예언자의 직책으로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점이다.

둘째는 그의 계속되는 불복종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도움을 주시겠다는 약속과 셋째 야훼의 말씀이 그의 입에 담긴다는 구절로 『나는 이렇게 나의 말은 너의 입에 담아 준다』(9절)는 부분은 특별히 중요한점으로 부각 되는데 그는 야훼의 대변자로서 그 숱한 애환의 삶을 통해서도 자기사명을 다한다.

2~10장은 유다백성들의 죄에 대한 고소와 그 벌에 대한 경고가 공포를 몰고 온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이 부부생활을 순결하게 잘 하다가 외도한 것처럼 바알(가나안의 토속시)을 허겁지겁 쫒아가는 어리석음을 집중적으로 고발하는 동시에 형식적인 예배를 하면서도 마치 하느님을 섬기는 것처럼 착각하는 이중성을 비웃는다.

사회적인 측면으로는 이미 아모스와 이사야가 질타한 부정불의로 조장되는 사회비리를 고발한다. 이제 유다왕국과 예루살렘 도성이 깡그리 재로 화할 것이며 자연적 재앙을 통해서 내릴 벌이 확연하게 전반적으로 흐르고있다.

2, 1~4, 4은 기원전 622년 이전에 행한 설교로서 북쪽으로부터 부글부글끓는 솥물이 내려오게 된(바빌론의 침략)이유가 바로 너희들의 외고집과 우상숭배 때문이라고 고발하는속에 호세아적 성격이 두드러진 부분이기도 하다. 또한 개혁설교로서 「신명기적」성격이 엿보이며 율법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모든 시대」에 해당하는 죄가 고발되면서 이 죄를 그들이 시인하고 있다.

4, 5~6, 30은 거의 민요체로된 시로서 어떤 식으로든 유다에 닥칠 무서운 재난이 우리를 전율케하고있다. 원수는 마치『한마리의 사자가 수풀에서 뛰어나와 온세상을 끔찍스런 곳으로 만드는 자』(4, 7)로 묘사되며 그토록 믿어온 견고한 성읍 예루살렘은 쑥밭이 될것이다. 이 원수들의 행패는 먹구름처럼 몰려와 폭풍처럼 휩쓸어갈 것이다. 이때 예루살렘은 마치 정부들의 손에 배신당해 죽어가는 매춘부 같다. (4, 29~31)

그런데 예언자의 사명이 심판의 단호함으로 끝나지 않고『살고 싶거든 못된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라』(4, 14)는 외침속에 백성들의 마음을 변혁시켜야 하는것도 함께 위임받는다.

이제 예루살렘은 무적의 신이신 야훼를 거슬렀기 때문에 독안에 든 쥐꼴이되었다. 이 현장은 바로 가슴에 칼을 꽂는 아픔이며 이것은 바로 너희 죄가 자초한 불행이다 하니까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바로잡고 이미 야훼께서 일러준 그 바른 길로 돌아가자고 마치 병아리를 품는 어미닭처럼 타이른다. 백성의 행실을 면밀히 살피는 예레미야의 소명에는 마음을 갱신하라는 안타까운 절규가 토해지지만 끝없는 배신의 길을 치닫는 그들의 행실이 예레미야와 야훼와의 대화에서 선명하다 (6, 27~30).

하느님께서 눈과 귀를 열어주셔도 자기 이기심으로 이를 닫아버린다면 결국 하늘의 길은 흑암으로 가리워질 것이다. 우리 하나 하나가 예레미야적 사명을 의식한다면 저 위정자들이 이 백성들의 소망을 염두에라도 두려는지. 그러나 오늘날 하늘의 길은 왜 자꾸만 더 멀어만 보일까. (계속)

김혜자 수녀ㆍ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