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웃 이야기

[우리 이웃 이야기] 정은숙(수산나)씨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입력일 2018-05-29 수정일 2018-05-30 발행일 2018-06-03 제 3097호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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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두려움 있었지만 기쁘게 출산
부족함 채워주시는 하느님 섭리 깨달아
장애인 자녀 키우며 받은 사랑 소외된 이들 도우며 갚고 싶어

정은숙씨는 생명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이 소중한 생명을 어디에 둘까 고민하시다가 뱃속에 넣어주신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엄마의 몸에서 생명을 소중히 보호하고 기르길 바라신 것 아닐까요?”

정은숙(수산나·54·안양대리구 용호본당)씨는 40세가 넘은 나이에 늦둥이 요한(14)이를 임신했다. 둘째와도 10살 터울에 노산이라, 산모의 건강도 위험할 수 있었다. 가정 경제도 어려워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혀를 차거나 고개를 젓는 사람들…. 심지어 가족들조차도 집안의 어려운 상황에 “딱 한 번만 죄를 짓자”고 간곡하게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씨는 단호하게 “정말 소중하고 귀한 하느님의 선물”이라면서 출산할 것을 선언했다.

사실 정씨는 이미 낙태의 경험이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힘겨운 상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산부인과를 찾은 것이었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보고 애써 잊고 살아왔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정씨는 낙태에 관한 영상을 보게 됐다. 뱃속의 아기를 꺼내 죽이는 모습을 보면서 10년 전 “이렇게 건강한데 수술하시겠어요?”라고 묻던 의사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정씨는 가슴이 저릴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다. 정씨는 “그날 이후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면서 “신기하고 오묘하게도 몇 달 후 요한이를 임신했다”고 말했다.

“요한이를 키우면서 이 세상에는 ‘날개 없는 천사’가 정말 많다는 걸, 기쁨으로 이웃을 돕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요한이 덕분에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요한이가 6살이 되던 해, 지적장애 1급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편견과 멸시를 받았다. 반대를 무릅쓰고 낳았기에 누구에게도 위로받을 수 없어 괴로운 나날이었다. 큰 빚에 허덕이는 중이었기에 고통이 더 컸다. 하지만 정씨는 “하느님께서는 신기하게도 꼭 필요한 순간에 위로해 주시는 분을 보내주시고 부족한 가운데도 요한이를 키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물적으로도 필요한 만큼 채워주셨다”면서 “생명은 하느님의 섭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14살이지만 3~4살의 순수함을 지닌 요한이를 키우는 정씨의 상황은 결코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정씨는 요즘에도 시간을 쪼개 봉사를 한다. 주로 장애인, 미혼모 등 소외된 사람들 돕는 시설을 방문하는 활동이다. 요한이를 통해 이웃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나마 갚아야겠다는 마음에서다.

“선택한다고 말하는 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생명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부족하지만 저의 작은 재능이 하느님의 거룩한 생명사업에 도구로 쓰여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