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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가짜 뉴스··· ‘불이야!’ 소리만 칠 것인가 / 김지영(이냐시오)

김지영 (이냐시오) 전 경향신문 편집인rn
입력일 2018-05-21 수정일 2018-05-23 발행일 2018-05-27 제 3096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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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인 마셜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 : 1911~1980)이 오래전에 갈파한 지적이다. 매체가 달라지면 전달되는 메시지도 달라지고, 수용자가 세계를 인식하는 감각과 방법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전하는 내용과 전화로 전하는 내용, 신문과 TV로 전하는 내용은 각각 그 감도와 반응이 달라서 예전에도 이 짧은 말 한마디는 미디어의 특질을 대변한 것이라 했다. 그런데 이 말은, 기술의 발달로 미디어의 종류와 전달방식이 급변하고 끝없이 확장하고 있는 오늘날에 와서 정말이지, 실감나게 와닿는다.

뉴스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뉴스는 생산과 소비의 전 과정에서 종전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졌다. 뉴스를 다루는 매체의 종류, 뉴스의 범주,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부터 무너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매체보다 뉴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이들이 많아진지가 꽤 됐다. 또 신문과 방송 같은 전통매체가 아니라 등록되지 않은 1인 미디어까지 포함해 온라인과 모바일 및 SNS 등을 매개로, 누구나 뉴스의(사실 뉴스뿐 아니라 온갖 콘텐츠의) 생산자이자 소비자, 즉 프로슈머(프로듀서와 콘슈머의 합성어)가 됐다. 누구나 기자요, 프로듀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는 정부에서 기자들에게 ‘기자증’을 발급했다. 뉴스를 취재하고 제작하고 전달하는 자격을 정부에서 따로 특정인에게 부여했으니 요즘 세태와 비교하자면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얘기다. 이제 미디어는 현대 인류문명의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가 됐다.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세상 사람들이 소통하고 경제가 돌아가며, 정치가 행해지고, 사회가 움직이며, 문화가 활성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현대국가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를 3부라고 칭하면서 언론기관을 제4부라고 했지만, 요즘 어떤 이들은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경제 분야를 1부로, 언론을 2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새로운 문명에는 역시 반작용과 도전도 많다. 가짜 뉴스는 뉴미디어 세상의 대표적인 문젯거리다. 가짜 뉴스란 무엇인가? 뉴스란 곧 저널리즘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저널리즘이라고 하면 정확성, 객관성, 공정성이 그 핵심 조건이다. 말하자면 가짜 뉴스는 정확성이나 객관성, 공정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가짜 뉴스는 어떤 이해관계나 이념을 위해 뉴스를 조작한다. 가짜 뉴스의 특징은 뉴스의 첫 번째 요건인 사실관계(fact)가 우선 정확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을 조작해 신뢰를 망가뜨리는 가짜 뉴스는 결국 진실을 오도하기 때문에 사회의 정상적 기능을 무너뜨릴 수 있다. 6월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가 마치 비상사태를 맞은 것처럼 초긴장 모드에 들어간 것도 당연하다. 민주주의는 선거가 출발점이고, 선거는 공정성이 핵심인데 특정 이해관계와 이념에 사로잡힌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치면 민주주의 자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이번 홍보주일 담화문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너무나 시의적절하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불이 났을 때 ‘불이야’ 하고 외쳐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불을 끄는 실행이다. 우리 교회 안에서 가끔 목격하는 일인데, 눈앞에 벌어져 있는 현안을 해결해야 할 상황에 “주님이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고 넘어가면서 정작 결론은 없이 형식적인 행사만 치르는 것이다. 이럴 경우, 주님은 채워주시지 않으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홍보주일을 전후해 교회에서는 저마다 ‘가짜 뉴스’를 걱정하고 있다. ‘걱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속히 TFT(특별전담팀)를 구성해서 ‘가짜 뉴스’ 대비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본다. 가톨릭신문이 지난주 지적한대로 기본적으로는 ‘진리에 대한 앎’과 ‘인문학적 감성’이, 구체적으로는 신자들이 가짜 뉴스를 구별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추상적 원칙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 대책을 세워 강력하게 실천해야 한다. 세계 언론계가 축적해온 언론 윤리강령과 요강,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이 내용만 들어도 일반 신자들은 식별 능력이 생긴다.

사제들 중 미디어의 실제에 대해 아는 분들은 담당자·책임자를 포함해 거의 없다. 신학교 교과목에서도 배제돼 있다. 하지만 교회에서 의사 결정권은 전적으로 사제들이 행사하고 있다. 대책을 세우려 해도 잘 모르니까 결정은 미루고, 형식적 행사만 평신도들을 시켜 치르게 한다. 오늘날 미디어 변화가 세계문명 전환의 주요 요소가 되고 있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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