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주말 편지] 아드리아 해안에 쉼표 대신 숨표를 / 박선애

박선애(엘리사벳) 시인
입력일 2018-05-15 수정일 2019-09-16 발행일 2018-05-20 제 3095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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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성모의 밤을 앞두고 본당에서는 매듭 푸시는 성모님과 함께하는 9일 기도를 시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얽혀 있는 삶의 매듭을 어머니께 내어드려 도움을 주시기를 간절히 청하는 기도이다. 사랑이 충만한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의 탄원을 들어주시리라 믿으며 오후 8시, 각자의 매듭을 촛불로 봉헌하며 드리는 기도는 얼마나 간절해 보이는지 절로 숙연해진다. 그 한구석에서 가슴을 열어 나의 매듭을 조심스레 내어본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싶다던 그녀에게 대안으로 제시한 발칸반도 여행이 순식간에 결정되고 누구나 그렇듯이 기다리는 시간은 여행의 즐거움을 넘어섰다. 모두 부러워하는 자매끼리의 여행. 와인 잔을 준비하고 오프너를 챙기고 예쁜 접시까지. 밤이면 와인 잔을 부딪치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리라.

자매라지만 6년 터울의 그녀는 맏딸답게 오빠들을 두고도 혼자만의 방을 가지고 풀 먹인 옷깃도 혼자 해결하고 비슷해 보이는 주말의 명화 주인공들을 구별하여 경이롭게 보이던 기억이 앞선다. 엄마에게 혼이 나면서도 기어이 배낭을 메고 대문을 나서던 모습, 언젠가부터는 주변 친구들보다 예쁜 도시락을 싸주고 바느질 숙제도 맡아 해주던 그녀는 영원한 큰언니였다.

그런 언니와 30여 년을 전주와 부산에서 1년에 한두 번, 가족 행사에서 애틋함을 나누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살아왔고 그 시간 동안 그녀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딸을 얻고 남편을 잃었다. 그리고 딸을 시집보내고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살던 곳을 떠나 황혼 육아를 맡고 있다. 그녀를 떠올릴 때면 가슴이 먼저 먹먹해지던 내게는 풀려고 하면 더 단단해지는 매듭처럼 굳어버린 아픔이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으로 풀리지 않을까 기대하며 짐을 꾸렸다.

효도 관광처럼 즐거움만을 주고자 몇 번을 다짐했었는데 공항에서 비행기에서 호텔에서 20여 명의 일행 속에서 우리는 멀고 가까웠다. 앞에 서야 하고 뒤에 서야 편한 판이한 성격, 일행 속에서보다는 적당히 선을 긋고 여행을 즐기고 싶어하는 나와 떠들썩한 무리 속에서 시시콜콜 집안 이야기까지 풀어놓고 싶어하는 그녀. 내가 보기엔 오지랖이 분명한 그녀의 배려. 나는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내가 그리고 있었던 큰언니가 아님에 슬슬 말이 줄어든 내 앞에서 모든 게 자신이 없다던 한마디로, 나의 큰언니는 여인이 되었다.

주름을 선글라스로 감추어야하는 초로의 여인들은 비슷하게 닮아있었고 같이 나이 들어가며 시간을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으면서 여행은 즐거워졌다. 열심히 셀카봉을 들고 사진 찍고 장거리 버스 안에서 잠자는 대신 틈틈이 메모하는 모습에서 얼핏얼핏 큰언니의 모습이 되살아났다.

아드리아해 유람선에서 이렇게 한가로운 적이 없었던 것 같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어쩌면 그 마음이 더해져 바다는 시리도록 푸른색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든 이에게 평화와 위안을 주는 성모님께 아드리아 해안에 찍고 온 것이 언니에게 쉼표가 아니고 숨표이기를 기도한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선애(엘리사벳)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