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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잡은 두 손, 평화의 문 열다] - 특별기고 / 남북 정상회담 평가와 전망

최진우(스테파노)rn서울대교구 평화나눔연구소 소장
입력일 2018-05-01 수정일 2018-05-01 발행일 2018-05-06 제 3093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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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첫 걸음… 북한 복음화 노력 계속돼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 식수를 마친 뒤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를 계기로 물꼬가 트인 남북 간 접촉과 대화는 불과 6개월 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을 양상과 속도로 전개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필두로 5~6월에는 사상 초유의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며 그 전후로 한미 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이 열리게 된다. 그 결과에 따라 북핵 폐기, 북한의 정상국가화, 북미 국교정상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대북 제재 이완 또는 해제, 북한의 개혁 개방, 국제사회의 경제 지원 제공 등이 뒤따를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의도, 동기, 전략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고, 그래서 미래를 예단하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현재진행형의 이벤트만 놓고 본다면 한반도에 획기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희망 갖기에 충분했던 합의문

2018년 4월 27일, 우리는 한반도의 분단 현장에서 펼쳐진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의 장면 장면을 때론 숨죽이며, 때론 환호를 터뜨리며, 때론 눈물을 삼키며 지켜봤다. 예상을 뛰어넘는 우호적 분위기, 생각보다 디테일했던 합의문은 우리에게 희망을 갖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그러나 천리 길도 첫 걸음부터라고 했듯이 일단 새로운 시작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가다가 넘어지고 고꾸라지더라도 다시 털고 일어나 가던 길을 갈 수 있지만 시작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가던 길을 되돌아오지 않고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지혜와 용기를 발휘하고, 하느님께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우리와 함께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직 우리의 심정은 기대와 불안, 반가움과 걱정스러움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하고 있지만 북한의 진정성 그리고 주변국의 계산과 선택 등에 대한 우려와 불안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번 회담의 성과가 되돌려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지난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미국 변수다. 과거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미국이 빠져 있었다. 미국은 예전 남북 정상회담의 경과와 성과에 대해서는 지극히 소극적이었거나 유보적인 태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이 주역이다. 미국은 우리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최종 협상 당사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당사자며, 우리는 중재자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대한 약속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위험부담이 그만큼 더욱 커진 것이다. 특히 북한의 입장에서 협상이 결렬됐을 때 감내해야 할 후폭풍이 너무나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모든 것이 장밋빛으로 전개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비핵화의 시간표가 서로 다를 것이고, 대북제재의 변화 속도와 범위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협상이 쉽지 않으리라는 전망의 이유다. 설령 북미 간, 그리고 남북 간 정치적 대타협이 이뤄지더라도 북한 주민의 삶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핵문제와 함께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가장 큰 관심사인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우리가 희망하는 동북아시대도 아직 요원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타고, 기차에 몸을 싣고 북한을 가로질러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누비게 될 그런 날이 오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북한은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 북한의 지향점

북한이 지향하는 변화는 크게 두 가지다. ‘경제강국’ 건설, ‘정상국가화’가 그것이다. 경제강국 건설을 위해 북한은 앞으로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추구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곧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의미한다. 우선 경제의 대내적 시장화와 대외적 개방화는 빠르게 전개될 것이다. 시장화는 이미 북한경제의 거스를 수 없는 현실이 된 지 오래며, 북한경제의 대외 의존도 또한 이미 매우 높은 수준이다. 국제제재가 북한에게 아플 수밖에 없는 것도 바로 북한경제가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북한은 ‘경제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시장화와 대외적 개방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체제에 대한 도전이나 변화의 압력에 대해서는 결연히 저항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정권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북한식 사회주의가 고수될 것이며, 노동당 일당독재는 지속될 것이다. 체제 우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고 사상 교육도 한층 강화될 것이다. 정보의 흐름에 대한 통제는 더욱 정교해질 것이고, 당분간 민간 교류나 접촉은 계속 제한될 것이다. 인권과 자유에 대한 보편적 가치는 단호하게 거부할 것이며, 자신들의 이른바 ‘우리식 사회주의’에 대한 도전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우리와의 문화 교류, 민간 접촉에 있어서는 적극성을 띠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통제를 더 강화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물질 영역은 개방하되, 마음은 다잡아 놓기 위해서다. 과연 그런 몸부림이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시간이 걸리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 종교 교류 허용될까

여기에서 우리는 북한이 추구하는 두 번째 목표, ‘정상국가화’에 주목하게 된다. 북한은 정상국가로 인정을 받을 때 비로소 소위 ‘적대세력’으로부터의 위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사회로부터의 소외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다. 그러기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 부인을 대동했으며, 국제의전에 충실하려는 노력을 보였던 것이다.

지구상에 정상국가 치고 종교자유가 북한처럼 통제받는 곳은 없다. 다른 사회주의 국가 어디를 가도 북한에서처럼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틀어 막혀 있었던 데는 없다. 종교를 지금처럼 억압하는 한 북한은 ‘이상한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한이 정상국가의 반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종교 활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제스처라도 쓰지 않을 수 없다. 국제적 차원의 종교 기구에 참여하려 할 것이며, 남북 간 종교 교류도 어느 정도 허용할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말하자면 종교에 관한 한 ‘기회의 창’이 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더욱이 가톨릭처럼 국제화의 수준이 높은 종교에 대해서는 더 적극적인 수용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복음화가 바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당 기간 동안 북한은 ‘면피성’ 접촉 허용 정도로 일관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북한은 지금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강변한다. ‘종교 시설’ 내에서는 자유롭게 신앙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당도 있고 교회도 있고 사찰도 있으며, 종교인도 있다. 이는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종교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신앙의 자유가 ‘종교시설’ 바깥에서는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으며, 신앙인이 되는 순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아마도 북한은 정상국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남북 간 종교 교류를 제한적으로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 우리 가톨릭교회도 북한교회와의 교류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신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제한적인 범위의 ‘교계’ 인사들과의 만남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대외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확대되고 있다고 선전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 교회는 북한과 만남의 기회가 열렸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고 성찰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기회의 창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리며, 기다리고 인내하는 가운데 북한 복음화의 길이 더욱 활짝 열릴 것을 마음을 다해 하느님께 기도하며 우리를 이끌어주실 것을 간구해야 할 것이다.

최진우(스테파노)rn서울대교구 평화나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