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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잡은 두 손, 평화의 문 열다] -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 대담

정리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8-05-01 수정일 2018-05-01 발행일 2018-05-06 제 3093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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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이해하고 편견 없애려면 자주 만나야 합니다”

4월 29일 광주대교구청에서 가톨릭신문과 만난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남북한 교류를 활성화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한다. 사진 박원희 기자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정상회담은 한반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평화와 화해의 새로운 장을 열어 주었다. 특히 이번 정상회담은 한민족의 염원인 통일과 민족 화해를 향한 여정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톨릭신문은 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광주대교구장)로부터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와 의미, 우리 국민과 그리스도인들이 새롭게 열린 평화의 대장정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들어보는 대담을 마련했다.

김 대주교는 대담에서 “상생과 평화의 새 시대”가 열렸다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의 사도’가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특히 김 대주교는 남북한 간의 ‘만남’이 중요하다며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을 위한 노력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대담 : 장병일 편집국장

■ 일시 : 2018년 4월 29일

■ 장소 : 광주대교구청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시아와 전 세계에 평화의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우선 정상회담을 지켜보신 소회와 함께 그 역사적 의미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희중 대주교(이하 김 대주교) : 대결과 갈등의 역사에서 상생과 평화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한반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이 평화의 기운이 동북아시아의 평화,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지 예루살렘은 여러 위대한 종교의 성지이면서도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웠습니다. 많은 이들이 한반도가 예루살렘과 같은 화약고가 될 것을 걱정했지만, 이제 그런 우려를 불식하고 화해와 평화의 대장정을 열었으니 이번 회담은 정말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장 국장 : 회담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것이 전반적인 평입니다.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론 등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 단계적 군축, 완전한 비핵화의 공동 목표 확인 등 평화를 위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준 자리였습니다.

▲김 대주교 : 한반도의 두 정상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안정과 평화, 민족중흥의 큰 틀에서 합의했으니, 이제는 이를 구체화하는 각론을 마련하는데 더욱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이번 ‘판문점 선언’의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계시긴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번 합의문은 이전 정상회담과 남북 합의를 모두 포함하고 이를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장 국장 : 주교님 말씀대로 큰 틀의 합의를 이뤘으나 이제 첫걸음을 내딛었다는 의미에서 앞으로도 산적한 과제가 많을 것입니다. 당장 코앞으로 닥친 북미 정상회담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도 당면 과제입니다. 한반도 주변국들의 협력 또한 중요할 텐데요.

▲김 대주교 :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분명히 밝혔듯이, 한반도 평화를 견인하는 것은 남북 정부와 국민들입니다. 하지만 주변국들로부터 동의와 협력을 얻어내는 것도 안정된 평화의 로드맵을 구상하고 추진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한반도가 냉전의 틀 안에 갇힌 대립과 갈등의 상황을 종식하고 종전 합의와 평화협정을 맺을 수 있도록, 관련국들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평화를 위한 노력에 동참하고 협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서도 대미를 장식할 수 있는 역할을 미국에게 넘기고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일본도 적극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돼야 합니다.

-장 국장 : 궁극적인 평화 정착은 단지 정치적인 노력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모든 국민들의 관심과 노력, 특히 오랫동안 갈라져 있던 남북한 주민들의 서로에 대한 태도와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 회담으로 열린 새로운 평화의 여정에서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요?

▲김 대주교 :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이해를 통해 서로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민간 차원, 특히 종교인들의 교류 협력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문화예술인들과 체육인들의 교류를 활성화함으로써 남북 주민들의 통일과 평화 정착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할 준비가 필요합니다.

경제 협력도 필요할 텐데요. 당국간 경제 협력 노력과는 별도로 북한의 철도를 개량하기 위해서 철로 침목을 하나씩 기증하는 운동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든 국민들이 뜻을 모아 북으로 가는 철로에 침목 하나씩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장 국장 :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맹목적인 ‘반공 이데올로기’가 살아있고, 이른바 ‘색깔론’이 정치적 이해 추구의 도구로 악용되곤 합니다. 어쩌면 남북한 주민들의 서로에 대한 이질감과 적대심이 평화의 여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김 대주교 : 통일의 당위성, 민족 화해의 필연성에 대한 의식이 퇴색한 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방적이고 편향적으로 북한 관련 정보를 전달한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지금이라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공정하게 절제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언론은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서 국민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정상회담의 결과를 ‘퍼주기’로 비난하기도 합니다. 과거 독일 통일의 예를 보면, 수십 년 동안 서독은 서독의 자본이 동독으로 흘러가게 해 동독의 경제 수준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일종의 투자입니다. 운하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수위가 다른 강의 높이를 똑같이 만들어야 하듯이, 남북 간의 경제 수준도 서로 비슷하게 조절해야 통일 후 경제적인 부담감을 덜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은 편견과 선입견이 담긴 자극적 표현들은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종북좌파’, ‘꼴통보수’ 등 자극적 표현들은 실체가 없는 감정적인 표현들입니다. 보수나 진보의 갈등 역시 생각해볼 일입니다. 국가 운영에서 보수와 진보는 모두 필요합니다. 그런데 철학이 없는 보수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기적인 태도, 철학이 없는 진보는 계급 투쟁의 위험한 사고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은 서로 자제해야 합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전망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는 김희중 대주교와 본지 장병일 편집국장(오른쪽).

-장 국장 : 어떤 이유로 생겨났든 분열은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 가운데 통일과 민족 화해가 왜 우리 민족의 지상 과제인지, 특히 ‘그리스도의 평화’를 위해 일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통일을 위한 투신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부연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 대주교 : 분열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되는 죄악의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가장 먼저 평화를 빌어주셨습니다. 남북한의 대결 상황은 그리스도의 평화와 정 반대의 모습입니다. 사실 이번 ‘판문점 선언’에는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남북 평화와 화해를 위한 기도의 노력도 한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바친 ‘평화를 위한 기도’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종교인들이 종파를 떠나서 민족 중흥과 국태민안, 우리나라의 최고 이념인 ‘홍익인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세계평화를 위한 노력에 헌신해야 합니다.

-장 국장 : 통일사목을 위한 한국교회의 노력도 이제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한국교회 통일사목의 전망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김 대주교 : 북한 지역에 대한 선교와 복음선포는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남북 국민들의 동질성 회복, 우리가 서로 한 가족이라는 의식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통일사목의 프로젝트들에 앞서서 민간 차원의 충분한 교류 협력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축적된 만남과 이해를 토대로 더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선 사목 현장에서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미 지난해 주교회의에서는 전국 본당에 ‘민족화해분과’ 설치를 결의한 바 있습니다. 모든 본당이 민족 화해를 위한 노력을 주관할 부서를 설치하고 다양한 교육과 연수,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 차원에서 북한의 ‘조선카톨릭교협회’와 더 적극적으로 접촉해서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나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곧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님을 비롯한 여러 주교님들을 만나 논의할 예정입니다.

-장 국장 : 통일과 민족 화해와 관련해 특별한 구상을 하고 계신 사례가 있다면 간략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김 대주교 : 여러 해 전부터 비무장지대를 유네스코 세계생태평화공원으로 지정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왔습니다. 전쟁의 상징이 된 비무장지대 안에는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은 온갖 식생대와 생태계가 자연 그대로 존재합니다. 이 소중한 생태계의 보고를 그대로 보전하면서 평화를 위한 담론이 이뤄지고 평화운동의 중심이 되는 생태평화공원으로 지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장 국장 :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국민들과 신자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김 대주교 : 통일과 민족 화해의 과제는 정부와 관계 당국자만이 끌고 갈 문제는 아닙니다. 범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비로소 모든 정책들이 힘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세대만이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까지 마음에 두고 화해와 평화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만나는 것입니다. 남북한 교류를 활성화하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허심탄회하게 서로 10년만 만나면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서로 ‘합치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일단은 서로 자주 만남의 기회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정리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