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생태칼럼] (27) 산으로 가는 길

박그림(아우구스티노)
입력일 2018-04-17 수정일 2018-04-17 발행일 2018-04-22 제 3091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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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에 들어 생명의 흔적이 눈에 띄지 않을 때면 반달곰과 산양이 살았던 오래전 설악산의 모습을 그리워한다. 숲속을 어슬렁거리는 반달곰, 바위 위에 우뚝 서있는 산양, 생명의 소리와 발자국과 흔적들, 바람결에 묻어오는 숲의 냄새, 산에서 만나는 생명의 흔적은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살아서 꿈틀거리는 산은 수많은 생명을 품고 길렀으며 사람들도 산에 들어 자연의 경이로움 속에서 뭍 생명들과 더불어 살았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설악산은 상처가 늘어났고 아픔이 커져 갔으며 생명의 소리는 가냘파졌다. 반달곰은 사라졌고 겨우 살아남은 산양도 사람들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목숨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다니면서 등산로는 깊이 패이고 무너져 내리고 있으며 출입금지 지역을 함부로 드나들면서 야생동물은 사라지고 죽은 산으로 바뀌고 있다.

산으로 가는 길은 여러 길이 있지만 자연에 나를 맡기는 길 하나를 따르게 된다. 가야 할 산이 정해지면 우선 올라야 할 산길을 지도에서 들여다보고 며칠이나 걸릴지, 얼마나 험하고 힘들 것인지,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꼭 필요한 장비와 단순한 먹거리를 알아보고 마련하면서 마음은 벌써 산을 오르고 있다. 넘치는 상상력으로 온 산을 헤매고 다닐 수도 있고 꽃들이 만발한 하늘꽃밭에 눕기도 하고 짐승들의 발자국을 따라 그들의 세상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렇게 산에 갈 준비가 다 되면 배낭을 지고 나선다.

처음 오르는 산길이 조금도 낯설지 않고 굳이 정상을 고집하지 않음으로 자유롭게 몸을 산에 맡기게 된다. 스치는 바람의 간지러움과 코끝에 와 닿는 향기로움, 어둑한 숲길을 갈 때의 뻗히는 호기심, 험한 곳을 넘어섰을 때의 대견함, 발자국 속에 담긴 짐승들의 삶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작고 앙증맞은 들꽃의 아름다움 속에서 우주의 빈틈없는 질서를 느끼고 비바람과 눈보라 치는 날 오르는 산길은 자연의 거스를 수 없는 힘과 흔들림 없는 삶이란 어떤 것인지 가늠해보게 된다. 능선에 올라 눈 아래 펼쳐지는 풍경 속으로 빠져들면 꿈틀거리는 산줄기들의 모습은 얼마나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지, 날아갈 듯 불어대는 바람 속에 서면 가슴은 뻥 뚫리고 마음은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날아다닌다. 때마다 모습을 바꾸며 다가서는 자연 속에서 산의 맑은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지내는 날들은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이끌 것이다. 산으로 가는 길은 스스로를 이끌어 가는 길이며 자연과 더불어 가는 길이다. 자연 속에서 작은 생명에 지나지 않는 나라는 존재를 느끼면서 더불어 사는 길을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산에 들 때 어떤 마음과 몸가짐이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행동으로 옮길 때 설악산은 상처와 아픔이 사라지고 반달곰과 산양이 지천으로 뛰노는 산으로 바뀔 것이다.

박그림(아우구스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