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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주일 특집] 늦깎이 응답자에게 듣는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n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
입력일 2018-04-17 수정일 2018-04-18 발행일 2018-04-22 제 3091호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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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고 있다. 사제 혹은 수도의 길, 혼인의 길. 다양한 성소(聖召),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에 적당한 나이는 몇 살일까? 나이가 많으면 무조건 포기해야 할까?

남녀 수도회 성소모임 담당자들의 말에 따르면, 최근 혼인 연령대만이 아니라 수도회 입회 연령대도 높아지고 있다. 개개인의 면담을 통해 미처 깨닫지 못한 성소를 식별하게 되면 대부분의 수도회는 그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곤 한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각 신학교에도 입학하는 이들의 수가 늘었다 줄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올해 성소주일을 앞두고 흔히 ‘늦깎이’라고 부르는, 뒤늦게 성소의 길을 찾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 34세 3학년 최현규 신학생

제 삶의 체험 모든 것이 성소

“조금 돌아온 것 같지만, 돌아보면 그 길도 다 성소의 길이었습니다.”

수원가톨릭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최현규 신학생(이냐시오·34·춘천교구 솔올본당)은 신학교에 들어와 사제성소를 준비하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사제성소의 길 하나만 바라보는 것도 좋은 길이지만, 사제의 삶에 이어지는 수많은 것을 함께 바라보며 갈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한다”고 회고했다.

“교회에는 열심히 살아가는 평신도도 필요하잖아요. 열심한 평신도로 살아가겠습니다.”

대학시절, 최 신학생은 성소를 권유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하곤 했다. 남들 못지않게 대학생활을 즐겼고, 졸업 후 유명 은행에서 잠시 일하다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서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바로 “참 행복은 무엇일까”하는 질문이었다. 2012년 ‘선택 주말’에 참여하면서 이 고민을 성찰했고 자신이 “교회 안에 속해있을 때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성소를 다시 깨닫고 걸어온 길은 쉽지 않았지만, 그때마다 일으켜 세워준 사람들이 있었다. 대학원 수료 후 재도전한 신학교에서 또 다시 떨어졌을 때도 본당신부의 제안으로 사무장으로 일하면서 신학교 입학을 준비했고, 다음해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 후에는 설암(舌癌)이 발견돼 1년간 휴학했다. 치료하던 중에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 성직자묘역에서 우연히 만난 김운회 주교의 격려에 힘을 내 이겨내기도 했다.

‘공동체와 함께 잘 노는 신부’가 되고 싶어 교구 사제의 길을 택했다는 최 신학생은 자신은 “여전히 성소의 과정 중에 있다”며 “신학교에 와서 배우고 만나고 체험하는 일들은 물론 신학교에 오기 전 경험한 일들도 하나하나가 다 성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학교에 들어오기 전 청년들의 고민을, 사회생활을 경험하게 해주신 것은 따뜻하게 마음을 나누면서 교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라고 이끄시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하느님께서 주신 역할을 발견해 나가면서 성소의 길을 가고 싶습니다.”

<이승훈 기자>

■ 40세 수련수녀 류영혜 수녀

“사랑한다” 그분 말씀에 결심

“하느님께서 의심 많고 반항심 많은 저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셨습니다.”

류영혜 수녀(미리암·성심수녀회)는 37세에 입회했다. 다른 수녀들은 이 나이에 종신서원까지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어 강사로 일했던 류 수녀는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평범하게 살아갈 줄 알았다. 그러다 뒤늦게 하느님 체험을 하게 됐다. 7년 전 프랑스 떼제공동체를 방문했을 때였다. 평소 의심이 많았던 그는 반항심으로 삐딱하게 앉아 하느님께 끊임없이 질문했다.

“하느님 진짜 거기 계시나요?”

그런데 “나는 너를 무척 사랑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꼬았던 다리가 저절로 풀렸다.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는 “‘날라리 신자’였던 제가 그때부터 하느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도자로 살고 싶다는 결심을 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데에는 2년이 더 걸렸다. 그를 가장 망설이게 했던 것은 ‘돈, 직장 등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그럴 때마다 기도하며 하느님과 일치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거리를 지나다보면 예쁜 옷과 신발이 눈에 들어와요. 하지만 더 이상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게 됐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어요.”

‘한 영혼을 위해서라면 세상 끝까지라도 가겠다’라는 성녀 마들렌 소피바라 수녀(성심수녀회 설립자)의 영성은 그가 수도생활에 온 몸을 던질 수 있는 이정표가 됐다. 그가 선택한 수도회가 사복을 입는다는 점도 “겉모습이 아니라 오롯이 저의 말과 행동, 사랑으로 사람을 대할 수 있도록, 또한 제 내면의 정체성을 더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힘”이라고 말했다.

현재 그는 성심여중에서 종교 수업을 가르치는 교목 사도직을 수행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그가 받은 소명이다.

특히 류 수녀는 성소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항상 더 큰 준비를 하고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계신다”고 강조했다.

<성슬기 기자>

■ 57세 부제 양기승 부제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기도하세요

“나는 왜 사제의 길을 걸어야 할까?” “사제란 누구이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양기승 부제(요한·57·의정부교구 소속 예수마음선교회)가 매일미사 중 성찰하는 질문이다. 그는 2014년, 53세의 나이에 인천가톨릭대학교 3학년 신학생으로 편입했다.

하느님 축복의 전달자로서, 제단의 봉사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고 그 마음대로 살고자 선택한 길이다. 체력도 열정도 청년 시절 같지 않아 신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것만도 쉽진 않다. 함께 수학하는 후배 신학생들은 물론 동기 부제들도 조카뻘이다. 하지만 매일 느끼는 기쁨은 이전 삶의 두 배라고 한다.

사제의 길이 양 부제가 선택한 첫 번째 성소는 아니었다. 20대 후반, 그는 불우한 청소년들을 돕겠다는 마음 하나로 한 수도회에 입회했다. 갑작스럽게 권유받은 교리교사 활동이 거룩함에 대한 생각을 키우는 작은 밀알이 됐다.

사실 사제로서의 삶은 물론 수도 생활도 ‘나와는 전혀 관계 없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청소년·청년들이 부르심에 응답하기 전에 흔히 거치는 복사활동이라든가 예비신학생 모임 등에도 참가해본 적이 없었다. 직장도 탄탄했고 결혼을 하고 낳을 아기 이름도 미리 지어놓을 정도로 결혼에 대한 꿈이 컸다. ‘나를 죽이고 가라’고 할 정도로 극렬하게 반대하는 아버지까지 뒤로 하고 입회했고 행복했다.

그런데 중년기의 위기가 찾아왔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인간적인 욕심, 꿈에 대한 애착 등이 끊임없이 꿈틀댔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삶의 목적과 방향성을 다시 물으면서 피정 중에 ‘새로운 부르심’을 들었다.

“제가 받은 피정의 은총을 나누며 살기 위해 사제의 길을 다시 선택했습니다. 피정에서는 강의와 성사, 특히 고해성사와 성체성사가 꼭 필요한 것도 사제 성소에 응답하게 된 큰 동기였죠.”

양 부제는 누구든, 언제가 됐든,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체험할 때 성소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묶어만 둘 것이 아니라, 성소를 선택하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주정아 기자>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n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 stell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