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400년 약속 이어온 ‘카푸친 크립트’ 아시나요?

입력일 2018-04-10 수정일 2018-04-10 발행일 2018-04-15 제 3090호 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카푸친 수도회가 지켜온 합스부르크 왕가 무덤
카푸친회 성당 지하에 안치
신앙적 내용의 석관 조각 눈길

마리아 테레사 황후 석관 위의 조각상. 영혼과 육체의 부활을 의미하는 똑같은 모양의 마리아 테레사 황후상이 서로를 마주보며 일어나고 있다. CNS 자료사진

【빈 CNS】 카푸친 작은형제회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본받아 겸손하게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수도회다. 이러한 카푸친 작은형제회 수도자들이 오스트리아 왕가의 무덤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무덤인 카푸친 크립트(Capuchin Crypt)는 빈 근처 카푸친 수도회 성당 지하에 있다. 이 작은 성당 지하는 정교하게 조각된 석관이 들어 있는 많은 방과 이들을 잇는 터널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이 무덤에는 150여 명의 왕족들이 묻혀 있다. 카푸친 수도자들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몰락했지만 계속해서 이들의 무덤과 석관들을 지키고 있다.

카푸친 크립트의 피터 그루비츠 관장은 “수도자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들의 무덤을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푸친 수도자들이 오스트리아 왕가의 무덤을 지키기 시작한 것은 16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티롤의 안나 황후는 유언을 통해 당시 국민들에게 신망을 받았던 카푸친 수도자들에게 왕가와 국가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1600년대 말 페르디난드 3세 황제는 모든 왕족의 무덤을 이 성당 안에 두기로 결정했다.

그루비츠 관장은 “합스부르크 왕가는 충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며 이를 통해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았다”면서 “신성로마제국 지도자가 가톨릭 신자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카푸친 크립트 안의 석관들은 다양한 합금들로 장식돼 있다. 각 장식들은 모범적인 인물들과 이들의 이야기를 표현한다. 또한 이 석관들에는 신앙적 내용도 담았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자신들 또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는 죽음과 헛됨에 관한 다양한 상징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몇몇 왕족들은 자신들이 죽기 전에 석관을 제작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1780년에 죽은 마리아 테레사 황후다. 황후의 석관 위에는 똑같은 모양의 황후상이 서로를 마주보며 일어나는 조각상이 있다. 영혼과 육체의 부활을 상징하는 이 조각상은 그녀가 죽기 30년 전에 완성됐다. 카푸친 크립트에는 1989년 죽은 오스트리아의 마지막 황후 치타와 그의 아들 오토 황태자(2011년)까지 묻혀 있다.

카푸친 작은형제회는 1960년대에 공식적으로 카푸친 크립트의 소유주가 됐다. 현재 관람객들은 입장료를 내고 자유롭게 이 지하 미로를 돌아볼 수 있다. 입장료는 무덤 관리와 석관 복구 작업에 쓰인다. 무덤 위의 성당에서는 주기적으로 미사를 봉헌하지만, 정식 본당을 운영하진 않는다. 또한 이 성당은 빈 시민들에게 고해성사 장소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