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건강하게 삽시다] (끝) 남 앞에서 얼굴붉히는 여인

최수호ㆍ가톨릭의대 외래부 교수
입력일 2018-04-02 수정일 2018-04-02 발행일 1985-09-22 제 1473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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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과보호가 중요 원인
사람을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땀이 나면서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호소하는 20대 젊은 여인의 이야기다.

어떤때는 잠을 못 잘때도 가끔 있으며 집에서도 가끔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때문에 창피하다고 그녀는 호소하였다.

그녀는 외동딸로 자랐으며 주위로부터 사랑과 칭찬을 독차지하면서 살아왔으나, 그런 사람들이 싫고, 거짓말로 그들이 칭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

그녀는 초등학교때부터 모든 것을 다 잘하여 반장, 회장도 하였으나 앞에 나가 회의를 주재할 수가 없었으며, 얼굴이 붉어지고 창피감을 느꼈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지금도 자기친구들이 오면 딸을 내세워 피아노를 치게 하면서 같이 놀기를 원하는데, 이제는 그것이 싫다고 했다. 어릴때는 어머니가 시키는데로 하였는데 성장하니까 어머니가 너무 자기 위주로만 자식을 다루는 느낌이 든다고 하였다.

남들은 자신을 칭찬하고 가족들은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모르겠으나 그녀의 마음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인정을 받고 있지 않다고 하였다. 이런 감정은 어릴때부터 서서히 싹이 텄고 그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부모는 자기를 자랑하면서도, 무엇을 못했을때는 『그것도 못하느냐』아니면 『IQ가 그것밖에 안되느냐』 『남의 집 애는 잘하더라』하면서 남과 자기를 비교하는것이 몹시 싫다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어머니는 매사에 가장 잘하는 딸이어야된다는 식으로 강요하고 있으며 딸에게 일어나는 모른 일을 알고자 하며, 알리지 않았을때는 몹시 섭섭해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자기 친구들을 항상 집에 초대하여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어머니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떠나질 않는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그런 생활을 탓하지도 않았고 그냥 버려두고 있다고 그녀는 불평을 하였다.

부모는 무슨일이 생기면 그녀에게 먼저 말을 해서 해결하도록 하는 습성이 있는데, 외딸이기때문에 그렇게 해야되는줄로 알고 중개역할을 하고 있으나 대단히 부담스럽다고 호소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수 있는 것은 첫째, 부모사이에 대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딸을 중개로하여 모든 일을 처리하는 병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다. 부부간에 대화가 없으니, 어머니는 딸을 자신의 외로움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것을 못견디어내는 딸은 신경병이 걸려오고 있었다.

자식이 성장하면 스스로 독립할 수 있도록 스스로 해결하는 습성을 길러주는 부모의 태도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녀는 어머니의 요구에 진저리가 나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내적으로 부모에 대해 미운마음이 자리하게 된 것 같다. 그녀는 어릴때부터 부모에게 반항한 일이 없었으며 반항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둘째, 그녀는 부모의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여 자기표현을 하지 않았다. 부담스럽고 부당한것을 지적하고 그것을시정하도록 요구 하지못한것이다. 부모는 그런 저항을 불효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결국 부모의 과보호와 간섭이 자식의 자율성ㆍ창의성의 성장을 저해하였으며 무의식적으로 부모에 대한 적대감이 그녀로 하여금 얼굴이 붉어지고 창피감을 느끼게 하는 어색함을 불러일으켰던게 아닌가 싶다.

최수호ㆍ가톨릭의대 외래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