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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성인약전] 성 조윤호 요셉 / 김옥희

김옥희 수녀ㆍ한국교복자회ㆍ오륜대순교자기념관장
입력일 2018-03-19 수정일 2018-03-19 발행일 1985-08-11 제 146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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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ㆍ부친이어 3대째 순교사
사형직전 마지막 식사까지도 태연하게
성 조윤호 요셉은 앞에서 언급한 순교자 조화서 베드로의 아들로 1848년에 충청도 신창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친을 따라 1864년에는 전주 성지동에 이사하여 이곳에서 결혼하여 부친과 한집에서 살면서 교우 본분이나 규범을 충실이 지켰으며 모든 신자들이 그들을 좋아했다. 조요셉은 부친의 성품을 닮아 용감하면서 신심생활에 대단히 열심하였다.

이들 부자간에는 토론도 종종하였고 한편 결혼 후 부모밑에사는 처지라 말다툼도 자주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은 깊은 부자지정을 나누며 부자가 모두 신앙생활에 전생애를 걸고 살아나갔다.

부친 조베드로가 체포되어 그의 집에서 심문을 받고 있을때 아들이 늦게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부친은 아들로『너는 여기에 들어와선 안된다. 어서 다른곳으로 가거라』라고 하였다. 그러나 조요셉은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아버지 방으로 들어가『아버지 저더러 이제 어디로 가란 말씀이십니까? 저도 같이 묶여가기가 소원입니다. 이제껏 믿어온 헛되지 않기 위해 저도 아버지를 따라 가게 허락 해 주십시오. 저는 순교하는 날을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렸는지 모름니다』라고 간절히 간청하였다. 이에 그도 그의 부친과 함께 체포되어 관가에 압송되었다. 조요셉은 문초하는 관리들에게 자기 한테 성교도리를 가르쳐 준 사람은 1839년에 순교한 할아버지 소안드레아 였다고 확답하면서 성교책은 전혀 가진것이 없다고 부정하였다. 관리들은 온갖 수단을 다하여 조요셉을 배교시켜 보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격분하여 그들의 모든 감언이설을 일축해 버렸다.

조요셉은 오랜 문초와 심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확고부동하게 그의 부친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렬하게 자신의 신덕을 용감히 증거하면서『내가 살고 죽는것은 당신들의 권한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께 달렸으니 그런 말은 아예 그만 두어라』고 그들에게 당당하게 대답하였다.

얼마 후 그보다 먼저 사형장으로 끌려 나아가는 그의 부친을 보고 마지막 헤어질 때『아버님! 아버님은 영복소로 떠나십니다. 거기에 가시더라도 저를 잊지 마십시오』라고 하자 그의 부친은『물론 나는 영복소로간다. 그러나 너도 마음을 단단히 다져먹고 곧 나를 따르도록 하여라』고 격려했다.

조요셉은 부친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당시의 국법은 부자(父子)를 한 날에 한 칼로죽이지 못하는 형률로 인해 조요셉은 다른 날에 쳐형하게되었다. 전주 감사는 조요셉을 다시 한번 배교시켜 보려고 갖은 유혹을 다하였다. 하물며 형장에 끌려가는 도중에서까지도 혹심한 구박을 받았고 또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까지도 배교를 요구하자 그는『당신은 어떤 사람의 부모가 죄를 범하여 그 아들이 대신 잡혔을때 재판관이「네 부모가 아니라고 말해라」라고 한들 그 아들이「내 부모가 아니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하물며 나는 만선미호하신 천주님을 알았고 그 것을 따랐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 교를 거짓이라고 하며 버틸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말은 절대로 할수가 없으니 나를 곧 죽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1866년 12월 23일 포졸들이 그에게 큰 칼을 씌워서 먼길로 뛰면서 사형장으로 끌고가는 바람에 그는 기진맥진 되었다.

물론 길에서도 배교하면 잃어버린 재산을 모두 다시 찾아주겠다고 하면서 그리고『네가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절대로 후회하지않겠다고 확답하자 기가막힌 관리가 사형선고장을 그앞에 갖다 놓았다. 그는 즉시 태연히 서명하였다. 그리고서 음식과 물을 받아 든후 조요셉은 조용히 성호를 놓고서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였다.

이에 기가 질려버린 전라감사가 음식 맛이 어떠냐고 묻자 요셉은『하느님이 창조하신 음식이라서 무척 맛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어 그의 옷을 벗기고 곤장을 친 다음 머리 위로 손을 제쳐 넘기게하고 땅에 눕힌후 반쯤 죽을 정도로 매질을 하였다. 요셉이 심장마비의 위험을 느끼자 관가의 한 집행인이 곧이를 알아차리고 명령을 다시 내려 교살케하였다.

그가 순교한 곳은 서문 밖에 있는 장터 서천교 밑이며 그의 어머니와 많은 장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엄하게 순교하니 그의 나이 19세였다. 그의 시체는 그의 부친과 함께 서문밖 서천교 위에 있는 용머리 재에 묻혔다. 마침내 젊은 조요셉은 숨을 거두어 한국의 보배로운 순교자가 되었다. 조요셉의 장한 순교로서 그의 집은 연 3대의 순교자 가문이 되었다. 즉 조요셉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그리스도께 대한 신덕을 용감히 증거하면서 1866년 12월 23일에 19세된 생명을 주님께 봉헌하였던 것이다.

김옥희 수녀ㆍ한국교복자회ㆍ오륜대순교자기념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