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밀알 하나] 뒤에서 기도 / 노중호 신부

노중호 신부 (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
입력일 2018-03-13 수정일 2018-03-13 발행일 2018-03-18 제 308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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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고 논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시간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제 생애 가장 힘들었을 때를 꼽으라고 하신다면, 고3 시절도 순위에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고3, 너무 어린 나이에 인생에 있어 큰 결정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리고 안성에 있는 안법고등학교는 3년 내내 수업을 마치고 12시까지 자율학습까지 하도록 했습니다. 아주 짧게 저녁 시간 일정만 말씀드리면, 5시25분에 수업 마치고 5시40분에 청소 마치고 학교 도서실에 이동해 저녁을 먹습니다. 정말 기계처럼 그 시간에 맞추어야 자율학습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추억처럼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12시까지 자율학습을 버티기 위해서는 6시부터 6시20분까지 엎드려서 쪽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학교 바로 담 넘어 안성성당에 갔습니다. 큰 성당에 저 혼자일 줄 알았는데 이미 몇몇이 와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학교에서 교장신부님 미사를 돕는 전례부 친구들이었습니다. 힘들어서 예수님께 푸념이라도 하려고 성당으로 피신해 앉아있는 것이었는데 시나브로 성체조배가 됐습니다.

‘주님, 친구들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제 기도는 안 들어주셔도 되니, 친구들의 기도를 꼭 들어주십시오.’

성당의 뒷자리에서 지금 생각해도 참 대견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보다 더 진솔하고 맑은 기도를 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와서 살펴보니 성체조배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사실 그때 무엇을 청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단순히 수능시험을 잘보고 예비신학생이었기에 ‘신학교에 합격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알아서 해 주세요’라고, 너무 힘이 들어서 원망스러울 때는 ‘니 맘대로 해’라고 예수님께 욕 아닌 욕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배짱이 두둑한 기도였습니다.

이제 본당 신부로 살아가면서 미사 전에 신자들 뒤에서 성체조배를 하며 고등학교 때의 기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교우들의 뒷자리에서 ‘어떤 기도일지 모르지만 주님, 들어주십시오. 교우들이 서로 오해를 쌓아두거나 서로 싸우지 않고 살게 해 주십시오. 신앙 안에 신앙으로 살고자 했는데 ‘믿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 있어’라는 실망과 분노로 거룩한 마음이 상처 입지 않게 하소서.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말씀하신 주님을 따르게 하소서. 때로는 목숨도 못 바치는 목자(직분을 주셨으니 감히 목자라고 하지만)이지만 이제 목숨도 바치는 사랑을 키우게 하소서. 양들이 서로 헐뜯으면 제가 서 있을 이유를, 서 있을 자리를 못 찾았습니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하는 모습으로 있게 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가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양 냄새나는 목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멍멍 짖는 강아지로만 끝나지 말고 뒤에서 묵묵히 기도해 줄 수 있는 참된 목자가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내가 무언가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뒤에서 기도해 주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노중호 신부 (성남대리구 서부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