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새 사제들 신학대학 동아리서 배운 수화로,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수화미사

권세희 se2@catimes.krrn사진 성슬기
입력일 2018-03-13 수정일 2018-03-14 발행일 2018-03-18 제 308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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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나누는 미사의 기쁨”

3월 11일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준본당에서 봉헌된 수화미사 중 차서우 신부가 “여러분의 기도 덕분에 사제가 됐다”면서 “앞으로도 여러분을 자주 뵙고 미사를 함께 봉헌했으면 좋겠다”고 전하고 있다.

“연습을 많이 했는데도…, 첫 수화미사라서 그런지 너무 떨리네요.”

3월 11일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준본당(주임 박민서 신부, 이하 농아선교회본당)을 찾은 차서우 신부(서울 잠실본당 보좌)는 수화로 하는 첫 미사를 앞두고 소감을 전했다. 함께 미사를 집전하는 전진 신부(서울 사당5동본당 보좌) 역시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수화 동아리 ‘손을 펴라’에서 5년간 배운 수화로 첫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손을 펴라
■ 신학대학 동아리 수화반 ‘손을 펴라’

차 신부와 전 신부는 올해 2월 1일 사제품을 받고 사목자로서 삶을 시작했다. 이들은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을 다닐 때부터 수화 동아리에 들어 약 5년간 수화를 배웠다.

동아리 이름 ‘손을 펴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펴라고 한 말을 따라, 수화를 하려면 손을 펴야 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20여 명으로 이뤄진 동아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청각장애인들과의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복음과 독서 등을 배우고 익힌다. 농아선교회본당에서 수화 교사를 파견해 가르치고 있어 본당과의 인연은 남다르다.

신학생 시절 첫 인연을 맺고 부제 때 독서나 복사를 하며 수화로 미사 하는 방법을 익힌 두 신부에게 농아선교회본당에서 첫 수화미사를 드리는 의미는 각별하다.

전 신부는 “수화를 배운 것은 청각장애인 신자들이 미사에 참여하고 싶어도 쉽지 않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며 “수화미사를 통해 신자분들이 성사생활과 신앙생활에 소외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차 신부도 “장애가 있는 형이 있는데, 평소 생활을 할 때 형을 많이 도와야 했다. 형의 존재가 제게 큰 영향과 계기를 줬다”며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는 물론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함께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랑합니다. 어디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함께 하고 싶습니다.

#I love you
■ 영성에 목마른 청각장애인 신자들

두 신부가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집전한 첫 수화미사에는 120여 명의 신자들이 함께했다. 성당이 꽉 차도록 빽빽하게 자리를 채운 신자들은 두 신부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부제시절 이미 여러 번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신자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린이 신자들도 있었다.

차서우 신부 주례로 거행된 미사에는 두 신부를 도와 농아선교회본당 주임 박민서 신부도 함께했다. 긴장한 모습의 새 신부들이 집전하는 ‘수화미사’에 함께한 신자들의 모습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큰 기쁨이 느껴졌다.

신자들은 두 신부의 방문에 꽃다발을 전달하고 소박한 축하식을 여는 등 고마움을 표현했다.

농아선교회본당 사목회장 정종옥(알베르타)씨는 “신부님들이 수화로 미사를 해주시니 너무 기쁘다. 신자들도 새 신부님들의 수화미사를 보며 기뻐할 것”이라며 “두 신부님께 수화를 배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신부님, 수화를 배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신부님께서 수화로 미사 해주시니 너무 기뻐요.

#감사합니다
■ 수화 가능한 사제의 부족

미사가 있는 날이면 촘촘하게 앉아도 공간이 부족한 성당을 찾아 먼 곳에서 걸음을 하는 이들도 적잖다. 2019년이면 마장동으로 성당을 옮겨 갈 계획이지만, 여전히 지역적으로 한계가 있는 신자들이 많다. 수화로 미사를 진행하는 본당이 많지 않기 때문.

박민서 신부는 “매 주일 무료로 본당에서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미사를 드리기 위해 먼 곳에서 점심도 못 먹고 오는 신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수화미사가 가능한 교구들은 몇 군데뿐이며, 수화가 가능한 사제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곳도 있다. 이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거나 먼 길을 돌아 어렵게 신앙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두 신부는 수화를 하며 신자들과 만난다는 점에서 오히려 배우는 것이 많다면서 장애가 있는 이들이 더 풍부한 신앙생활을 영위할 수 있길 희망했다.

전 신부는 “장애를 가진 분들은 청각장애인들을 포함해 우리가 사는 어느 곳에도 존재한다. 그분들의 목마른 영성을 축일 수 있도록 수화를 할 줄 아는 사제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며 “후배들이 수화를 많이 배울 수 있도록 이끌겠다”고 밝혔다. 차 신부 역시 “청각장애인 신자들은 이곳에 오지 않으면 미사를 드리기 쉽지 않다. 신자들이 신앙에 대한 열망이 큰 만큼, 어디서나 성사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풍부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민서 신부와 전진 신부, 차서우 신부(왼쪽부터)가 수화로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하고 있다.

권세희 se2@catimes.krrn사진 성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