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서평]「이 사람은 누구인가」 - 예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묵상

김영남 신부(의정부교구 성직자실장)
입력일 2018-03-13 수정일 2018-03-13 발행일 2018-03-18 제 308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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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십자가 곁에서 깨달았네, 우리 향한 사랑을…
라인홀트 슈테혀 주교 저/장익 주교 역/128쪽/1만2000원/분도출판사
예수 수난·죽음·부활 신학 의미, 당시 현장에 간 듯 생생히 표현
저자가 직접 그린 삽화들 수록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 그리고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은 떼려야 뗄 수 없는 큰 몫을 차지한다. 신자들이 해마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사순 시기를 보내는 것이 그 이유다. 이에 따라 사순과 예수 수난·부활에 관한 책들은 많이 출간돼 왔다.

라인홀트 슈테혀 주교(Reinhold Stecher·1921~2013·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교구 전 교구장)가 집필하고 장익 주교(전 춘천교구장)가 번역한 「이 사람은 누구인가」는 예수님의 수난·죽음·부활에 관한 정치사회적 상황을 짚으며 수난 이야기에 깊게 파고들어 그 의미를 밝혀내 더욱 눈길을 끈다.

책 내용을 따라갈수록 그리스도가 처했던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우리가 늘 찾고 있는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깨달을 수 있다. 그 깨달음은 점차 ‘나’는 누구인지, 나는 지금까지 누가 됐는지에 관한 자기성찰 질문까지 나아가도록 이끈다. 사순 시기를 마무리하며 책을 통해 신앙, 그리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가톨릭 신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수난, 죽음, 부활을 담은 책 「이 사람은 누구인가」를 더욱 뜻깊게 묵상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김영남 신부(의정부교구 성직자실장)가 서평을 풀어냈다.

<권세희 기자 se2@catimes.kr>

「이 사람은 누구인가」에 수록된 슈테혀 주교 작품 ‘ 동트는 예루살렘’ .

성주간을 앞두고, 라인홀트 슈테혀 주교가 쓴 성삼일에 관한 소책자가 장익 주교의 격조 높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 출판됐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반가운 이유는 여러 가지 있다. 많은 사람들의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저자, 깊이 있는 신학적 내용, 예수 수난사와 관련된 다양하고 신선한 역사적 자료들, 간결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문체. 특히 글이 집약적이면서도 신선하고 과감하다는 점을 꼽고 싶다. 무엇보다 공들인 훌륭한 번역 등.

저자는 한국교회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독일어권에서는 주교로서 그리고 영성 저술가로서 상당히 알려진 분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02년부터 2005년, 바티칸라디오 독일어 방송에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를 주제로 강연한 원고 내용을 기본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 기본 바탕에 저자가 인스브루크 가르멜 수녀원에서 강의한 예수 수난사화에 관한 안내의 글이 앞에 덧붙여 있고, 뒤에는 저자가 예수님 재판 소송의 주요 등장인물들에 관해 강연했던 것이 부록으로 덧붙여 있다. 이 부록이 특히 매력적이다. 부록이라고 적혀 있지만, 분량이 적지 않아 이 책의 제2부라고도 불릴 만하다.

예수님의 수난사에 관한 책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과 관련된 주제이기 때문에 이에 관한 글은 지나치게 엄숙하거나 감성에 호소하는 신심 위주의 글이 되기 쉽다. 그런데 슈테혀 주교는 예수의 그 사건이 인류 전체를 위해 지니고 있는 깊은 신학적 의미를 독자들도 동감할 수 있도록 진지하게 노력하면서도, 그것을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결하고 생동감 넘치는 문체로 표현한다.

슈테혀 주교는 주교품을 받기 전까지 오랜 기간 종교교사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에서 ‘종교교육학’ 교수로 활동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는 깊은 신학적 통찰을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생생한 표현법을 사용하는 데 놀라운 재능을 지녔다. 이 책에도 그의 이런 능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저자가 복음서들이 전하는 성삼일(성목요일, 성금요일, 부활(밤과 아침))에 관한 이야기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꼼꼼하게 고증한 역사적 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장면 한 장면 세밀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문체로 해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가끔 독자들은 자신들이 마치 예수님 시대로 돌아가, 그분이 수난하시는 현장에 서 있다는 느낌마저 갖게 된다.

이미 훌륭한 번역가로 정평이 나 있는 장익 주교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격조 높은 우리말로 옮겨놓았다는 점도 이 소책자가 지니고 있는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의 하나다. 장 주교 자신이 슈테혀 주교의 생전에 그분과 깊은 친분을 갖고 있었고, 그분의 인품과 글에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훌륭한 번역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슈테혀 주교는 화가로서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일부 작품은 오스트리아 우표로도 여러 차례 사용됐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삽화들은 모두 슈테혀 주교가 이스라엘 성지에서 직접 그린 작품들이다. 이 삽화들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성삼일에 관한 묵상을 더 잘 하도록 도움을 줄뿐 아니라 그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했는지도 엿보게 해준다.

슈테혀 주교가 생전에 온 생명을 다하여 전하고자 했던 복음도 ‘나자렛 사람 예수를 통해 계시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었다.

교회의 사제로서 주교로서 그가 이루고자 했던 교회는 바로 이런 하느님의 사랑이 구체화되는 공동체였다. 또한 ‘섬김과 신뢰’, ‘관용과 대화’는 그가 주교로서 가장 중요하게 실천한 목표였다. 이런 배경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최고조로 표현되었다고 복음서들이 증언하는 이른바 성삼일에 관한 슈테혀 주교의 이 소책자가 태어났다.

아무쪼록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주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굳세게 믿고 생활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그러한 공동체를 이루도록 더욱 노력하게 되길 바란다.

김영남 신부(의정부교구 성직자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