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헬기조종사의 병영일기] 사랑의 혹한

이연세(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동서울대학교 교수
입력일 2018-02-26 수정일 2018-02-26 발행일 2018-03-04 제 3084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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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건강을 위해 하루 만 보 걷기를 결심했습니다. 봄이 온다는 입춘이 지났음에도 강추위가 몰아쳐, 월동재로 칭칭 동여맨 나무처럼 온몸을 싸맵니다. 하천을 따라 걷노라면 얼음이 둥둥 떠가는 물속에서 자맥질하는 오리, 검푸른 등지느러미를 드러내고 역동적으로 유영하는 잉어들을 보는 즐거움은 덤입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반려견입니다. 아내는 동물을 좋아해서 지나가는 강아지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눕니다. 스피치, 푸들, 닥스훈트, 퍼그…. 반려견 한 마리가 지나가는데, 옷을 얼마나 많이 입혔던지 걸어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여보! 우리처럼 강아지에게 옷을 껴입혔네요”라며 아내가 활짝 웃었습니다. 겹겹이 싸맨 강아지를 보니 몹시도 추웠던 소대장 시절이 떠오릅니다.

섭씨 영하 27.5도! 1985년 1월 경기도 양평의 기온이었습니다. 여기에 바람까지 더해졌으니 얼마나 추웠을까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때, 우리 대대는 혹한기훈련을 나갔습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먼저 중·소대훈련을 하고, 대대의 예하 중대를 둘로 나누어 쌍방훈련을 한 후, 100㎞ 행군으로 부대에 복귀했습니다.

훈련 중 가장 힘든 것이 바로 매복입니다. 매복은 중요한 목에서 적이 올 때까지 매의 눈으로 감시하다 공격하는 것입니다. 달빛마저 처연한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 이름 모를 산속에서 적(敵)뿐만 아니라 동장군과도 맞서야 했습니다. 속옷, 내복, 체육복, 전투복, 내피(일명 깔깔이), 야전점퍼, 외피를 입고 판초우의까지 덮었지만 살갗을 아리는 냉기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 한 가지 고통은 먹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지원이 원활하지만 그때는 반합에 밥과 국, 반찬을 한데 섞어 먹었습니다. 먹은 후의 뒤처리가 더 큰 문제였습니다. 몇 명의 병사들이 소대원의 반합을 모아, 개울가에서 두껍게 언 얼음을 도끼로 깨고 맨손으로 반합을 닦았습니다. 언 손을 호호 불며 식기를 닦는 전우들을 보며 눈물을 머금었습니다.

혹한은 모든 소대원에게 피하고 싶었던 시련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련이 심하면 심할수록 소대원들은 더욱 돈독해졌습니다. 2명 1개조의 진지에서 선임병들은 후임병들이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세심하게 보살폈습니다. 판초우의를 씌어주기도 하고, 서로서로 손을 비벼줬습니다. 졸지 않도록 깨워주고, 수통에 뜨거운 물을 담아 돌려가며 손을 녹였습니다. 그리고 행군을 할 때는 가장 무거운 기관총을 사수를 대신해서 선임병부터 돌아가며 메줬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약하고 힘든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숨어 있는 듯합니다. 그 측은지심이 곧 하느님의 사랑이 아닐까요.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했습니다.

혹한 속에서 자발적으로 전우를 도왔던 소대원들의 전우애는 바로 혹한을 이겨내는 따뜻한 난로였습니다. 혹한이 오면 그 당시 정(情)을 나눴던 종학, 창식, 상만, 용지, 지원 등 소대원들이 몹시도 그리워집니다.

이연세(요셉) 예비역 육군 대령/동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