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교회

[글로벌 칼럼] (15) 먼지인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회개하라 / 윌리엄 그림 신부

윌리엄 그림 신부
입력일 2018-02-26 수정일 2018-06-27 발행일 2018-03-04 제 3084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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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의 수요일 예식을 주례하는 사제는 신자들의 머리에 재를 얹거나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그리면서 두 가지 양식 중 하나로 신자들에게 말할 수 있다.

먼저 마르코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먼저 한 말인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1장 15절)라고 말할 수 있다. 전례서에서 이 양식은 가장 먼저 나온다. 이는 예수가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를 요약한 것이어서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놓은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 3장 19절을 인용한 두 번째 양식은 좀 더 전통적인 것으로 사제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고 말한다.

나는 그동안 두 가지 양식 중 어느 것을 쓸지 정하지 못해 왔다. 그래서 재를 받으러 오는 신자들에게 번갈아가면서 말한다. 대신 내가 재를 얹는 사람과 그 뒷사람까지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한다. 내가 어느 양식으로 재를 얹을지 결정을 못하는 만큼 신자들에게도 같은 혼동을 줄 셈인 것이다. 재의 수요일과 사순시기가 주는 이중 메시지에 대해 묵상할 기회를 주려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사순시기를 회개의 시간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사순의 기원과 기본 취지는 부활성야미사에서 세례를 받을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집중적으로 세례준비를 하도록 돕는 기간이었다.

현재의 고해성사 양식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죄를 뉘우친 신자들은 삼베옷을 입고 신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주교는 이렇게 대중 앞에서 회심한 신자들을 교회 공동체 안에 다시 받아들였다. 사순은 교회 공동체에 다시 들어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입교를 원하는 예비신자들에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순은 외교인들이 입교하거나 교회를 떠났던 이들이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 시기 이상으로 자리 잡았다. 교회 공동체가 예비신자들과 회개한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함께 나누고 부활 전례에서 세례 당시 한 약속을 다시금 상기시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또 부활 전례에서 세례를 통해 한 형제자매가 된 이들을 환영할 수 있도록 우리의 삶을 다잡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 신자들은 성주간 동안 진행되는 고해성사를 준비하며 사순을 보냈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위한 준비 중 하나가 바로 우리의 회개다.

회개는 단순히 죄의식을 느끼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그리스어로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이테’(Metanoeite)는 ‘방향의 전환’을 의미한다. 그래서 회개는 우리가 그저 나쁜 신자였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급진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져야 할 사명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회·심리·문화·경제적 영향을 살피고 이들로부터 멀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 사실 우리는 이를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은총, 바로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다는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이 필요하다. 이 은총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죄와 대면하고 용기를 얻어 삶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이 은총을 통해서만 우리는 죄에서 멀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세례 갱신을 준비하는 사순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이다. 우리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기쁜 소식을 믿어야 한다. 주님의 은총으로 죄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써 우리는 실제로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모든 죄를 멀리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남는 것은 ‘먼지’다. 재와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종종 삶이 헛됨을 상기시킨다. 영원을 위해 영구적이지 않은 우리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요청인 것이다.

17세기 영국 시인 앤드류 마블은 자신의 구애에 주저하고 있는 한 여성에게 ‘수줍은 연인에게’라는 제목의 연시를 썼다. “우리가 다만 충분한 세계와 시간이 있다면, 연인이여, 이 수줍음은 죄가 되지 않으리…. 그런데 나의 등 뒤에서 나는 언제나 듣지요, 시간의 날개 달린 전차(戰車)가 가까이 달려오는 것을” 단순하게 말하면 “자기야, 지체할 시간이 없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시는 재의 메시지다. 교회는 나와 여러분에게 “자기야, 지체할 시간이 없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먼지로 돌아가기 때문에 회개를 미룰 수 없다. 또한 세상에 그리스도를 알리는 우리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 이 사명은 너무도 시급해 미룰 수 없다. 시간은 짧다. 실행에 옮기자.

※윌리엄 그림 신부는 메리놀 외방전교회 사제로서 일본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주교회의가 발행하는 주간 가톨릭신문 편집주간을 지내기도 했다. 현재는 아시아가톨릭뉴스(UCAN) 발행인으로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윌리엄 그림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