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여성의 날에 만난 사람] 여성 NGO ‘소통과 치유’ 이미혜 대표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8-02-26 수정일 2018-02-26 발행일 2018-03-04 제 3084호 10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미투, 힘없는 자에게 가해진 차별과 억압의 문제”

이미혜 대표는 “한국의 미투 운동은 남녀 문제가 아니라 소수자에게 가해진 권력에 의한 차별과 억압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3월 8일 1만5000여 명에 이르는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요구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 것이 기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性) 격차 보고서 2017’에 따르면 한국의 양성평등 수준은 조사 대상국 144개국 중 118위다. 2015년 115위, 2016년 116위의 순위를 볼 때 갈수록 하락하는 추세다.

110주년을 맞은 올해 여성의 날은 여러모로 특별한 의미를 띤다. 미국에서 시작돼 최근 한국 사회에서도 확산되고 있는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으로 성폭력 근절을 위한 연대와 성차별적 사회구조 변혁에 대한 공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 2월 20일 국회에서는 여성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하는 법안이 통과돼 국제사회에 발맞춘 성차별 해소를 위한 다양한 인식 개선과 정책 추진이 기대되고 있다.

여성의 날을 앞두고 만난 여성 NGO ‘소통과 치유’ 이미혜(루시아·52·서울 목5동본당) 공동대표는 “이번 여성의 날은 뜻깊다”고 했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으로 시작돼 미투 운동에 이르기까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페미니즘 물결이 우리 사회 내 성차별적인 구조의 깊은 그림자를 정화시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미투 운동은 남녀 문제가 아니라 소수자에게 가해진 권력에 의한 차별과 억압의 문제로 봐야 한다”면서 “그동안 숨겨져 왔던 일상화된 차별과 여성 혐오를 드러내는 계기로 본다”고 말했다.

여성 NGO 활동에 앞서 1996년부터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전문상담원으로 가정폭력, 성폭력 등 각종 폭력 피해자들을 만나고 있는 이 대표. 가톨릭신문 기자 출신인 그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어려움 속에서 여성주의 상담가로 변신했다. 그만큼 그에게는 몸소 체험한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스며 있다. 폭력 피해 상담자들의 대리 외상 연구로 2015년 상담학 박사를 취득한 이후 관련 연구 및 치유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그가 ‘현장’에서 여성들을 만나며 가장 안타깝게 느끼는 점은 사회 전반에 걸친 ‘여성 혐오’ 현상이다. “여성 혐오는 다른 말로 여성에 대한 ‘경시’”라고 잘라 말한 이 대표는 “그런 측면에서 ‘미투’ 운동을 통해 중요하게 봐야 할 점은 여성 혐오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법과 제도, 문화적 관습 등”이라고 밝혔다. “문제 개선을 위해서는 유아기부터 노인기까지 체계적인 성(性)인지, 인권, 반폭력 평화 교육이 제도 교육과 평생 교육 안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특히 “여성을 소수자로, 가난한 자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다”면서 “세계 성(性) 격차 보고서에서도 드러나듯 숫자가 아닌 사회 내 각 구조의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들이 얼마나 참여하고 있느냐, 남성들과 평등한 권리를 갖느냐는 기준으로 여성 지위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한국교회 교세 통계를 볼 때 여성 신자 비율은 전체 신자 대비 60%에 가까운 57.7%다. 그러나 본당 내 의사결정 기구인 사목회의 여성 참여 비율은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 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가 발표한 ‘여성 사목 방향 정립을 위한 의식 조사 결과 보고서’(2005)에서도 응답자들은 교회에서 여성을 가장 잘 배려하지 못하는 분야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39.2%)를 꼽았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교회 내에서도 여성이 소수자로 머물고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성(性)인지 노력을 통해 젠더 문제를 남녀 대결 구도가 아닌 소수자에 대한 평등성·인권 확보 면에서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본당 의사결정 과정에 여성 의무 참여 비율 명시, 본당 여성분과 활동 방안 마련 등과 함께 이를 점검하는 모니터링도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2013년 설립한 ‘소통과 치유’는 ‘여성들과 마주하고 경험한 범주에서 내 목소리를 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됐다. 폭력 피해 여성들을 돕는 과정에서 자신이 소진돼 지친 사람들이 소통하고 역량을 강화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치유적 책 읽기 집단 상담, 여성의식 향상 전문가 특강, 폭력 피해 한부모 여성 가장 후원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