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신앙인의 눈] 어릴 적 사탕 얻어먹으러 예배당에 갔었습니다 / 김형태

김형태 (요한) 변호사
입력일 2018-02-06 수정일 2018-02-06 발행일 2018-02-11 제 308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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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꼬불꼬불한 동네 골목길이며 한참이나 그 길을 따라 내려간 초등학교 앞 신작로가 하얀 눈에 덮여 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50년도 더 전 어느 크리스마스 날 아침. 아직 학교 갈 나이도 안 된 조무래기는 코흘리개 여동생 손잡고, 골목길을 내려가고 학교 앞 신작로를 지나고 전차가 다니는 큰길을 건너 뾰족한 첨탑이 있는 예배당엘 갔더랬습니다. 엄마는 거기가 무얼 하는 곳인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오누이에게 제일 좋은 옷 차려 입히고 오늘이 크리스마스 날이니 한 번 가보라 했습니다.

예배당 창문 안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빨강 파랑 노랑으로 반짝이는 금종이로 만든 별과 고리들이 잔뜩 달린 트리 옆에서 아이들이 뭐라고 뭐라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손에는 저마다 사탕이며 과자를 들고서.

발돋움을 하고 한참 동안이나 창문 안을 들여다보다가 도무지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아서 그만 동생 손잡고 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나와 내 동생은 무얼 하러 교회엘 갔던 걸까. 한 달 전부터 길거리에 울려 퍼지던 크리스마스 캐럴 분위기 때문에? 사탕과 과자 얻어먹으러?

그리고 세월이 한참 지나 고등학생 시절 두 번째로 교회에 갔습니다. 어느 대학생이 나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요즈음도 활동하는 “4영리”를 따르는 이였습니다. 이 네 가지 영적 원리를 요약하면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인간이 원죄에 빠졌고, 예수님이 이 죄를 대신 지셨으니, 이를 믿기만 하면 내가 구원받는다’는 겁니다. 그 이후 한동안 나는 ‘내’가 ‘구원’ 받기 위해 열심히 이 교리를 믿고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또 오랜 시절이 지나간 뒤 나는 내가 왜 그리스도인인지에 대해 생각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지은 원죄가 나에게 상속된다는 교리도 그렇고,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도 그렇고, 이를 믿기만 하면 내가 구원받는다는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인 인간들을 상대로 무슨 연극을 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원죄를 짓지 않게 하시고, 원죄를 지은 게 상속되지 않게 하시고, 가장 낮은 데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는 대신 당신의 전지전능으로 우리 몸과 마음을 단숨에 항복시키시면 될 것을….

이제 나는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원죄’란 우리가 전체이신 당신에게서 분리되어 개체가 되는 순간 이 개체들에게 주어진 ‘이기심’이라는 영원히 벗을 수 없는 원초적 굴레를 말하는 거고, ‘십자가’란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이기심을 버리고 사랑하라 가르치신 당신을 우리의 이기심이 처형해 버린 걸 뜻한다고.

예수님이 아담으로부터 상속받은 우리의 원죄를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지셨고 이를 ‘믿기만’ 하면 ‘내’가 구원받는다는 4영리식 교리는,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 사랑하라는 당신의 가르침을 이 ‘내’가 구원받아, 살아서 복받고 죽어서도 천국에서 영원히 살겠다는 극도의 이기심으로 바꾸어 버릴 소지가 너무도 큽니다.

엊그제, 공석에서 부하 여검사를 성추행하고 이에 항의하자 부당한 인사를 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고위 검사가 교회에서 눈물을 훔치며 회개하고 신앙 간증을 했답니다. “믿음 없이 교만하게 살아온 죄 많은 저에게 이처럼 큰 은혜를 경험하게 해 주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니다.”

예수님이 믿음을 주시어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은혜롭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이 분의 간증은 여전히 ‘나’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있으니, 이기심이 맨 앞자리라는 고백으로 들립니다. 여검사는 “회개는 먼저 피해자에게 하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 날 여동생 손잡고 골목길 돌아 신작로 지나 전찻길 건너 예배당에 간 건 ‘사탕 얻어먹으러’ 였지만, 이제 먼 길을 돌아 왜 그리스도인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나의 구원’이 아니라, ‘나’라는 이기심을 버리고 이웃과 삼라만상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본받기 위해서임을.

김형태 (요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