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길에서 쓰는 수원교구사] 서둔동성당(상)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8-01-09 수정일 2018-01-09 발행일 2018-01-14 제 3078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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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복자 기리기 위해 1969년 완공

옛 서둔동성당을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커다란 종탑의 푸른 기와 위로 십자가가 보인다. 수원대리구 서둔동본당의 옛 성당이다.

성당을 신축하면 보통 옛 성당을 허물기 마련이지만, 서둔동본당은 옛 성당의 자취를 그대로 남겼다. 새 성당이 바로 옆에 있지만 18m에 달하는 종탑의 웅장함에 오히려 옛 성당의 모습이 더욱 돋보이는 듯하다.

화려하고 대단한 건축물도 아니고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유적도 아니다. 하지만 본당은 옛 성당을 기념비적으로 남겨놓았다. 이 성당이 순교복자를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기 때문이다.

1965년 주교회의는 병인박해 100주년(1966년)을 맞아, 전국적인 순교자 현양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그중 가장 큰 사업이 전국 각 교구마다 병인박해 순교복자를 기념하는 성당을 건립하는 것이었다. 교구 역시 1965년 6월 15일 열린 사제회의를 통해 순교복자 기념성당에 대한 의견을 모았다.

사실 교구는 1963년 설정 당시부터 순교신심을 교구의 신앙유산으로 계승하고자 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는 취임 당시 사목지침을 통해 교구를 “치명자들이 왕래하며 박해의 쓰라린 고통을 겪은” 곳이자 “치명복자 안드레아 김 신부의 거룩한 유해가 묻혔던 유서깊은 곳”이라고 언급했다.

이후에도 1964년부터 교구 순교자현양행사를 실시하는 등 순교자 현양에 큰 관심을 보여 왔다.

옛 서둔동성당 정면.

성당 입구에 서니 종탑에 큼직하게 적인 ‘천주교’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성당 규모는 302.34㎡로 아담한 편이지만 서둔동 어디에서도 이 종탑이 보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한옥 대문처럼 만들어진 입구 옆에는 복자기념성당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담은 안내문을 세워 성당을 방문하는 이는 누구나 성당의 내력을 알 수 있게 했다.

서울대학교 윤장섭 교수는 한옥의 이미지를 활용하면서 골조노출 기법으로 꾸민 현대적인 양식으로 성당을 설계했다.

이러한 독특한 양식은 당시 건축학계의 관심을 모았고, 전국에 세워진 복자기념성당 중에서도 돋보이는 건축물이라는 평판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붉은 벽돌의 건물에 1m 가량 기둥을 세워 공간을 두고 푸른 기와를 올린 모습이 한옥의 정취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종탑 지붕은 정자(亭子)를 닮았다 윤 교수는 신앙선조들이 사용하던 옹기가마의 모양에 착안해 14개의 기둥을 골자로 둥근 타원 형태의 8각형 지붕을 올렸다.

성당 연혁도 순교자들과 인연이 깊다. 서둔동본당이 설립돼 복자기념성당을 준비하기 시작한 해는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 24위의 시복식이 로마 성베드로대성당에서 거행된 해였다. 완공한 1969년 9월 16일은 성 김대건 신부의 순교 123주년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