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말씀묵상] 만약에 그랬더라면… / 장재봉 신부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rn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를 취득하고
입력일 2017-12-26 수정일 2018-01-09 발행일 2018-01-01 제 3076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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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민수 6,22-27 /갈라 4,4-7 /루카 2,16-21)
높은 곳만 바라봤다면 주님 잃었을 것
낮은 생각과 깊은 믿음으로 신앙 키우길

새해 첫날, 해마다 똑같은 독서와 복음이 선포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자녀의 긍지를 지니고 당당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담겨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더욱 사제에게는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는 말씀이 마음에 쏙 담깁니다. 사제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복을 청하면 언제나 응답해주시겠다는 복된 약속에 마음이 벅차, 새로운 각오를 여미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시고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마침내 아들 예수님을 통해서 죄인인 인간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축복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죄 때문에 영생의 축복을 잃은 인간을 위해서 몸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셨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 요한은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요한 1,12)고 들려주는데요. 바오로 사도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힘이 얼마나 세고 강한지, 실감하게 하는데요. 믿음을 통해서 우리의 정체성이 변화되고 하느님의 자녀로의 신분상승이 이루어진다는 걸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 아버지와 성모 어머니를 모시고 지내는 하느님의 가족이 된 것은 모두 믿음 덕분이니, 정말 믿음이 고맙습니다.

성경은 시작부터 끝까지 하느님께서 가장 정확한 때를 헤아려 당신의 일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얘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창세 전에 당신의 뜻을 세우시고 그 뜻에 따라 인간의 역사 가운데에 섭리하신다는 걸 소상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당신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성모님을 엄마 어머니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행복과 기쁨과 평화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고백이 그득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특히 루카 복음이 선택된 사실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루카 복음이 타 복음서에 비해서 유난히 가난한 사람에게 주목한다는 점에 마음이 쏠렸습니다. 루카 사도는 가난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훨씬 잘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자주 강조하는데요. 오늘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탄생비화에 동방박사가 등장하는 마태오 복음과 달리 가난한 목동들의 이야기로 꾸려가니까요. 밤을 새워 일해야 했던 목동들을 찾아온 천사, 그 말을 듣고 서둘러 베들레헴으로 달려갔던 가난한 이들의 설레는 걸음은 생각만 해도 감동적입니다. 그 날 목동들은 구세주가 태어날 정확한 장소를 알지 못했을 겁니다. 당연히 우왕좌왕했겠지요. 이 부분을 루카 사도는 “찾아냈다”는 어휘를 사용해서 우리를 안심시킵니다. 그러고 보면 천사들이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라고 일러준 것 또한 목동들이 너무 지치지 않도록 깜짝 힌트를 준 것이라 싶어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뿐만 아니죠. 루카 사도는 요셉이 방을 구하려 애쓴 흔적을 남김으로써 그 날. 만삭의 몸으로 방을 구해 헤매느라 지쳤을 마리아의 모습을 상상하도록 이끌어 주는데요. 그날 밤 가난한 목동들의 방문과 그들이 전해준 말이 마리아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리라 짐작하도록 합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작품 ‘성모 대관식’.

그럼에도 루카 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탄생일화는 너무나 초라해서 처연한 생각을 치우기 힘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을 그토록 초라하고 볼품없는 행색으로 모셔야 했던 마리아와 요셉의 아픔이 전이되어 옵니다. 그날 두 분은 하느님의 아들을 마구간에서 태어나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모두 자기 탓인 것만 같아서, 죄송하지 않았을까요? 그나마 차가운 땅바닥보다는 조금 나을 듯하여 동물의 밥그릇인 구유에 아기를 누이며 정말 안쓰럽고 송구하지 않았을까요? ‘만약에’ 그분들이 세상처럼 ‘높이’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면, 더 높아지고 훨씬 높아져야만 대단하고 훌륭한 삶이라고 여겼더라면, 그랬더라면 결코 그날의 초라함을 견디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아찔한 일입니다!

‘만약에 그랬더라면’ 하느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을 게 뻔하니까요. 때문에 낮아짐에 기죽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두 분의 정성이 고맙고 고맙습니다. 그 소박한 믿음의 행위가 바로 하느님의 협조자가 된 비결임을 깊이 새기게 됩니다.

새해 첫날, 우리는 축복의 길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위해서 온 삶을 내어드린 어머니 성모님을 기억합니다. 무엇 하나도 남김없이 깡그리 내어 준 지극한 모성을 공경하며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관심이 세상의 ‘높이’에 쏠려 있다면 ‘더 높아지고’ 훨씬 ‘높아져서’ 대단하고 훌륭해져서 멋져야만 행복할 것이라는 망상에 젖어 있다면, 누추한 곳에 계신 주님을 경배하는 겸손을 지닐 수 없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구유에 누운 작은 아기의 모습이 성에 차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돌봐드려야 하는 그 연약함이 싫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낮은 곳에 계신 그분을 만나지도 못하고 모시지도 못할 것입니다. 결국 주님을 잃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찬미가 높으신 분께로만 향하여 낮게 계신 그분을 외면하지 않도록, 우리의 기도가 높아지는 일에 급급하여 낮아지신 그분께 낯설지 않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낮은 생각과 깊은 믿음으로 아빠 하느님과 엄마 성모님께 귀한 자녀로 성장해야겠습니다.

새해의 첫날, 언제나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도록 섭리하신 “아빠,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가 선물해주신 엄마 성모님을 빼닮기 원하십니다. 곰곰이 은혜를 새기며 순박한 목동들처럼 서둘러, 추운 세상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기 원하십니다. 주님과 하나 되신 분, 하느님의 뜻을 고스란히 따르셨던 분, 착하고 고우신 우리 엄마 성모님께서 모든 교우 분들을 하느님의 뜻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보듬어 주시길…. 주님께서 허락하신 사제의 권한으로 청합니다. 아멘.

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rn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윤리신학 박사를 취득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