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특집]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운영 ‘인천 해성보육원’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12-26 수정일 2017-12-26 발행일 2018-01-01 제 3076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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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품어 키우는 ‘수녀 엄마’… 성모님 닮은 순명의 삶
 아직은 엄마 품 그리운 0~7세
 부모가 학대하거나 버려진 애들
“마음 닫고 울음도 삼키더니 어느새 자라나 감사함 느껴”

‘엄마’

듣기만 해도, 부르기만 해도 따뜻하고 포근한 그 이름.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마리아를 가리키며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라고 말씀하신다. 마리아는 순명 그 하나로 성모(聖母), 즉 하느님의 어머니가 됐다. 그리고 온 인류의 어머니가 됐다.

마리아처럼 하느님을 향한 순명만으로 ‘엄마’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수도자’로 불림 받았지만 ‘엄마’로 살아가는 수녀들이 있는 곳.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맞아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한국관구가 운영하는 인천 해성보육원(원장 경현옥 수녀)을 찾았다.

박경미 수녀가 아이를 안아들며 웃고 있다. 아기 안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수녀들은 더 보듬어주고 더 안아주지 못해 안타깝다고 말한다.

■ 엄마가 있는 아이들의 엄마

“수녀님이다!”

수녀복을 잡아당기고, 부비고, 매달리고…. 수녀들이 보이자 아이들이 엉겨 붙는다. “맛있는 거 달라”, “놀아 달라” 보채는 모습이 영락없이 엄마한테 떼쓰는 모습이다. 여느 부모라면 말릴 법도 하지만 수녀들은 얼굴 한가득 미소만 짓는다.

“기쁘죠. 아이들이 자기 의사표현을 하고, 요청하면 얼마나 고맙고 기쁜지 몰라요.”

해성보육원 원장 경현옥 수녀는 수녀들에게 매달리는 아이들이 “고맙다”고 말한다.

보육원이라고 하면 흔히 예전의 ‘고아원’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보육원에서도 부모 없는 아이들은 찾기 어렵다. 병원이 출산을 도맡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대부분 아이들의 생모(生母)를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연락이 가능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도 현재 보육원에는 0~7세 아이 85명이 생활하고 있다. 보육원 최대 수용인원에 가까운 수다. 그 많은 수가 부모가 버리거나 학대와 방임 등으로 인해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들이다.

경 수녀는 “학대나 버림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마음을 열기도 무언가를 요구하기도 어려워한다”면서 “울고 싶어도 속으로만 울음을 삼키던 아이들이 조금씩 자기표현을 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기쁘다”고 했다.

학대나 방임을 겪다가 오니 보육원에 들어올 때 아프거나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도 태반이다. 무엇보다 엄마가 있는데도 엄마 없이 자라야하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 큰 상처다.

해성보육원 원장 경현옥 수녀가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다.

이영희 수녀가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 아이들을 안아주는 ‘엄마’ 수녀들

“수녀님 어디가지 말고 여기서 같이 살아요. 네?”

이부자리에 든 7살 수연(가명)이가 얼굴을 빼꼼 내밀며 경현옥 수녀에게 말했다. 지난해 보육원을 떠나는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이별여행 중 있었던 일이다.

보육원을 떠나는 아이들에게 추억을 남겨주고 싶어서 마련한 이 여행에서 경 수녀는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자기로 했다. 어린시절 엄마와 이부자리에서 뛰기도 하고 이불을 몸에 돌돌 말기도 하면서 놀다 함께 잠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아이들에게도 이런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같이 살자”고 말하는 아이의 말에 수녀는 그저 안아주고 함께 눈물 흘렸다.

수녀들은 이런 아이들의 ‘엄마’ 자리를 채워주기로 마음먹고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바로 1894년 ‘제물포 고아원’이라는 이름으로 설립, 우리나라 보육기관의 효시로도 불리는 해성보육원이다. 이곳에서 수녀들은 ‘엄마’가 됐다. 벌써 124년 동안 아이들을 돌봐왔기에 아이 돌보기에 능숙할 것 같지만, 수녀가 ‘엄마’가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애를 키워봤어야죠. 큰 애들은 큰 애들대로 어렵고, 작은 애들은 작은 애들대로 어려워요.”

벌써 10년째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 경 수녀는 여전히 엄마 공부 중이다. 아이의 발달 단계에 따라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떻게 놀아줘야할지. 수녀들은 늘 아이들에 관해 공부하고 어떻게 해야 더 잘 사랑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

“슈여니~ 아나~ 아나~(수녀님 안아주세요)”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예림(가명)이가 아장아장 걸으며 박경미 수녀에게 다가갔다. 생각하기 전에 손이 먼저 나간다. 엄마를 부를 나이에, 엄마라는 말보다 “수녀님”, “이모”(보육교사)라는 말을 먼저 하는 아이들. 박 수녀는 웃으며 “일단 안고 본다”고 말했다.

아기 안기. 무심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들은 85명이지만, 수녀들은 6명뿐이다. 50명의 보육교사가 같이 아이들을 돌본다 해도 퇴근시간 이후에는 당직 교사들과 수녀들뿐이다. 수녀들도 각자 행정, 영양사, 간호사 역할을 병행하고 있어 몸이 지치고 힘들지만, 안아달라는 아이들의 부탁을 뿌리치지 못한다.

간호 담당인 박 수녀는 오늘도 몸이 아픈 아이를 안아들고 병원을 다녀오는 길이다. 다른 아이들보다도 키가 커서 몸무게 20㎏도 훌쩍 넘어 보이는 아이도 안아달라고 다가왔다. 고민될 법도 한데…. 박 수녀는 “‘다 컸으니 이제 안아줄 수 없다’고 말하면 다른 친구들보다 크다는 이유로 더 빨리 어른이 되길 강요는 것”이라며 아이를 안아들었다. 그러면서 “더 보듬어주고 더 안아줘서 충분히 접촉하고 안정감을 줘야하는데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보육원에는 보육교사나 봉사자도 있지만 아이들은 유난히 수녀들을 더 좋아하고 따른다. 수녀들은 늘 아이들과 함께 있기 때문이다. 또 수녀들은 아이들이 자주 바깥나들이를 할 수 있도록 외식도 자주 시켜주고 무언가 사러 갈 때도 아이들과 함께 나선다.

경현옥 수녀는 “이모(보육교사)들은 바뀌기도 하고 없을 때도 있지만 수녀들은 늘 집에 있고 곁에 있으니까 ‘수녀님은 늘 우리와 함께하고 우리를 좋아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보육원을 떠난 아이들도 수녀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보육원을 찾아온다. 학생이 되어 보육원에 봉사하러 오기도하고, 가정을 꾸린 후에도 명절마다 찾아오기도한다. 수녀들의 소임이 바뀌어 자신을 돌봐던 수녀가 없더라도, 보육원은 보육원을 떠난 아이들에게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 ‘엄마’가 되려다 ‘엄마’를 배우다

“하느님께서 생명을 품고 키우는 힘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아요. 수도자인 것이, 여자인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요.”

수녀들의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은 아이들의 성장이다. 수녀들은 아이가 걸음마 할 때, 아이의 배변훈련이 성공했을 때, 말문이 트였을 때 등 자라는 아이들의 순간순간이 “자랑스럽고 기쁘다”고 입을 모은다.

사무국장 이영희 수녀는 “아이들은 손길이 닿으면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서 “그때마다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저희가 아이를 돌보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를 돌봐도 괜찮다고 받아들여 주는 것 같아요. 제 존재가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을 받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마음이 돼요.”

박경미 수녀는 “아이들을 만나면서 오히려 자신이 힐링(치유)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을 통해서 저희에게 잘할 수 있다고, 힘내라고 격려해 주신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면서 “성모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아가 괜찮아’라고 불러주신다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