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세상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12-19 수정일 2017-12-19 발행일 2017-12-25 제 3075호 2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주님 성탄 대축일
(성탄 전야 미사 : 마태 1,1-25   밤 미사 : 루카 2,1-14   새벽 미사 : 루카 2,15-20   낮 미사 : 요한 1,1-18)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입니다. 이렇게 기쁨으로 가득한 성탄 대축일을 맞아 교회는 네 번에 걸친 미사를 통해 다양한 독서 말씀들을 듣게 되는데, 오늘은 네 미사의 복음들에 관해 간략히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는 성탄 전야 미사를 통하여 예수님의 족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이면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님이야말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자손, 다윗에게 약속된 자손 메시아이심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서 족보는 하느님 축복이 어떻게 전달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족보가 나오면 꼭 구원 역사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는데, 신약성경 마태오 복음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족보 이야기는 예수님을 통하여 드디어 새로운 계약이 이루어지게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다윗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는 예수님의 족보에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마지막에 예수님은 다윗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잉태된 아이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난 인간이지만, 육신적 가문을 넘어서는 분, 곧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느님이심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아브라함에게, 다윗에게 약속된 자손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난 것입니다.

성탄 전야 미사를 거쳐 성탄 밤 미사로 넘어가면 루카가 전한 복음이 울려 퍼집니다. 루카는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등록을 하러 베들레헴이라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가 거기서 첫아들 예수를 낳았다고 전합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루카는 예수님이 바로 유다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임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렇게 태어나신 예수님의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그분께서는 말구유에서 태어나십니다. 여관에는 예수님의 가족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시면서부터 천대받는 이들 가운데 머무십니다.

새벽 미사 복음으로 우리는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나선 루카 사도의 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목자들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여져 있는 아기 예수를 발견합니다.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다는 것이 아기 예수를 알아보는 표지였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분을 감싸던 것이 비단이 아니라, 포대기였으며, 그분이 누워있는 곳이 왕자들이나 공주들이 눕는 자리가 아니라 짐승들 먹이 그릇인 구유였습니다. 거기다 그분을 알아본 이들 또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천사는 외칩니다. 그분이야말로 백성들의 구원자, 주 그리스도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백성들 가운데 머무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은 비천한 모습으로 우리들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비천한 이들 가운데 머무십니다.

낮 미사 복음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명백히 듣게 됩니다. 우리들 가운데 머물게 된 그분이 바로 태초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태초부터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하느님께로부터 나온 말씀이 육을 취하신 것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이 창조되는 원리였던 말씀이 이 땅에 생명과 빛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신께서 창조하신 이 땅에 오신 분,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고자, 새로운 계약을 통해 다시금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분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는 예수님이야말로 아버지와 가장 가까우신 외아드님, 하느님임을 믿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고백하는 이는 그분을 통해 생명을 얻고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머물게 되신 이유입니다. 이처럼 오늘 읽게 되는 네 편의 복음들은 한결같이 나약하고 천대받는 인간들 가운데 머물게 된 하느님, 임마누엘을 기억합니다.

※ 성탄·송년 특집호 발행으로 이번 호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은 주님 성탄 대축일(12월 25일)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12월 31일) 복음 내용을 함께 싣습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