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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너희 가운데 너희가 모르는 분이 계신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12-12 수정일 2017-12-12 발행일 2017-12-17 제 3074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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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 (요한 1,6-8.19-28)

제1독서로 봉독한 이사야서는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신 메시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주 하느님의 영이 메시아 위에 내리시어 가난한 이들, 마음이 부서진 이들, 잡혀간 이들, 갇힌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질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메시아를 파견하시어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실 것인데, 그때가 되면 신랑이신 하느님께서 신부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봄을 맞이하듯 모든 민족들 앞에도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이 메시아가 바로 예수님임을 증언합니다. 요한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두고 빛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요한도 하느님께서 보내신 인물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빛을 증언하라고 파견된 인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풀며 사람들을 정화하는 것을 보고 유다인들은 요한이 혹시 메시아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사제와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요한이 활동할 당시 에세네파 사람들은 두 명의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여겼는데, 하나는 사제 메시아요, 또 하나는 임금 메시아였습니다. 그들은 사두가이파와 마찬가지로 사제계급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던 이들이었는데, 사제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이 사제계 메시아로 백성들을 정화하는 분이 아닐까 하고 여겼던 듯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서슴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을 보낸 이들은 바리사이들이었는데,(요한 1,24) 그들은 요한을 두고 “엘리야”냐고 묻습니다. 구약성경 예언서 마지막 편인 말라 3,23에 보면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리라는 예언이 나오는데, 메시아가 아니면 혹시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엘리야인지 물은 것입니다. 이 질문에 요한은 그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마지막으로 “그 예언자”인지 묻습니다. 신명 18,15에서 모세는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줄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그 예언자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요한의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라고 묻습니다. 이에 요한은 자신이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에 불과하다고 밝힙니다. 자신은 오직 메시아에 관해 증언하러 온 소리에 불과하며, 자신 뒤에 오실 분, 곧 메시아가 계신데,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라고 밝힙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하느님 일에 있어서 주인공으로 등장할 수 없습니다. 요한은 이런 식으로 베타니아에서 다가오실 예수님의 신원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너희 가운데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우리 곁에 메시아가 이미 와 계시지만 우리의 눈이 어두워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요한은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을 두고 “어둠”(요한 1,5)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 오시어 빛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 빛으로 우리 눈을 열어 주시어 당신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요한이 증언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 빛으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만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어떤 어둠 속에 있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고 언제나 기뻐하며,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성실하신 하느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반드시 빛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