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국군의무사령부 수의예방의학장교 김유진 소령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7-12-12 수정일 2017-12-12 발행일 2017-12-17 제 3074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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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가운’ 마다하고 ‘푸른 제복’ 택한 수의사

임상수의사 대신 택한 여군, 이라크·레바논 해외파병 자원
여군 수의장교 전군에 6명뿐, ‘소수정예’ 자부심 갖고 복무
힘든 군생활 버팀목은 ‘신앙’, 직접 전교 나서지는 못하지만 모범적 신앙생활 보이려 노력
매주 안산 빈센트의원 찾아 저소득층 돕는 봉사도 열심

여군 수의장교로 일하는 김유진 소령은 “신앙적으로 모범이 됨으로써 제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가톨릭 신앙을 택한다면 그것도 전교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김유진(실비아·41·군종교구 성요셉본당) 소령은 부와 안락한 생활을 버린 채 푸른 제복을 입고 수의장교의 길을 17년째 걷고 있다.

■ 푸른 제복 동경하며 택한 여군의 길

현재 경기도 성남 국군의무사령부 보건운영처 예방의학과 수의예방의학장교로 일하는 김 소령은 대학 수의학과를 나와 2001년 7월 1일 국방부 여군학교에서 여군학사 46기 소위로 임관하며 군문에 들어섰다. 대학졸업 뒤 두 갈래 길이 앞에 놓여 있었다. 임상수의사를 선택하면 고수익이 보장되는 평생직장을 가질 수 있었지만 주저없이 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푸른 제복에 대한 동경, 경제·생활 면에서 완벽한 독립, 전문성이 보장되는 업무, 급여와 보직에서의 남녀평등 실현 등 군생활이 주는 매력이 크게 다가왔다. 인간의 한계까지 치닫는 16주간의 강도 높은 기초군사훈련도 거뜬히 이겨내고 시작한 수의장교 생활이 이제는 청춘을 모두 바쳐가며 중견 장교의 길목에 들어서 있다.

전군의 수의장교 130여 명 중 여군은 김 소령을 포함해 6명밖에 되지 않는다. 소수정예다. 여군 수의장교는 계급별로 중령 1명, 중령 진급예정자 1명, 소령 3명, 중위 1명으로 여군은 소수인원이지만 모두 장기복무자라는 특성이 있다. 전체 장기복무자 30여 명만 놓고 보면 20% 가까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김 소령이 그동안 거쳐 간 부대만도 육군 제22보병사단, 제3사관학교, 제1군수지원사령부 등 모두 9개 부대나 되고 2007년 이라크 자이툰부대 의무대대 방역반장 파병, 2012년 레바논 동명부대 의무대 수의장교 파병도 자원해서 다녀왔다. 한국군이 육군사관학교에만 보유하고 있는 군마(軍馬) 관리를 책임지는 군마대장을 맡은 적도 있다.

■ 힘든 파병기간, 신앙을 버팀목 삼아

김 소령은 그 동안의 군 경력 가운데 두 차례에 걸친 파병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꼽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군인으로서 외국에 대한민국의 존재를 알렸다는 점에서 보람이 컸습니다. 특히 레바논 동명부대 파병 기간에는 임상수의사로서 지역주민들의 생계수단이 되는 가축들을 진료하고 부대에 반입되는 모든 식자재 확인과 검사, 취사장 위생점검을 맡아 부대원들의 건강과 먹을거리를 책임진다는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남녀 차별이 심한 중동 지역 특성상 현지 주민들에게 여군의 존재는 이채롭게 보였다. 군복에 태극마크와 UN마크를 단 김 소령은 자신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를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수행하며 현지 주민들로 하여금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부여했다.

파병생활에 보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위험이 상존하는 한정된 공간에서 생활하며 가족들을 볼 수 없는 환경을 참아내야 하는 등 힘들었던 순간도 많았다. 역설적으로 김 소령이 신앙을 생활의 중심에 두게 된 것도 파병기간이었다. 다행히 파병기간에 주일미사는 물론 매일 평일미사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큰 위안이었다. “파병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여러 힘겨운 순간들을 이길 수 있었던 단 하나의 버팀목이 신앙이었습니다.”

2007년 이라크 자이툰부대 파병 당시 동료 신자와 성당에서 함께한 김유진 소령(왼쪽).

2012년 레바논 동명부대 파병 당시 지역주민들의 가축을 돌보는 김유진 소령. 김유진 소령 제공

■ 신앙인으로 모범 보이는 것이 전교

김 소령은 야근이 반복되는 바쁜 군복무 중에도 주일미사에 빠지는 일이 없다. 미사 때 해설봉사도 하는 등 나름 성실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김 소령이 자신의 신앙생활을 반성하는 소소하지만 인상적인 사건이 있었다. 대학교 후배가 어느 날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면서 김 소령에게 “선배도 성당 다녔어요?”라고 말한 것이다. ‘내 신앙생활만 착실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다른 사람에게 신앙인으로 모범이 되지 못했구나’라는 반성을 했다. 유아세례를 받았던 김 소령은 이 일이 있은 뒤 2011년 뒤늦게 견진성사를 받았고 자신에게 신앙적 깨우침을 줬던 대학 후배에게 첫 대모가 됐다. 이후 군본당에서 여러 신자들의 대모를 섰다. “제가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하느님이 저에게 하시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저는 그분께서 저를 지켜보고 계시고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의무사령부 성요셉본당에서 일했던 이메리엔 수녀의 소개로 2016년 초부터는 경기도 안산 빈센트의원에 매주 토요일마다 찾아가 저소득층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일에도 시간과 노력을 나누고 있다.

“적극적으로 전교를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제 생활이 신앙적으로 모범이 됨으로써 제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가톨릭 신앙을 택한다면 그것도 전교라고 생각합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