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세상의 모든 ‘로만이’들에게 / 김선균

김선균 (라파엘)rn광주가톨릭평화방송 보도제작부장
입력일 2017-12-12 수정일 2017-12-12 발행일 2017-12-17 제 3074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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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형처럼 좋아하는 타사 기자 선배가 있다. 그의 질문은 부드럽지만 의표를 찌르고, 기사는 간결하지만 핵심이 있다. 선이 명확하고 굵지만 사람을 매몰차게 대하거나 가슴이 차갑지도 않다. 누군가 반론을 하면 귀 기울여 듣고, 그 입장이 타당하면 기사의 방향을 트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에게서 배운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약속을 잡을 때면 결코 ‘빈말’을 하지 않는다. 말로만 그치지 않고 대상이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일정을 잡는다.

편한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우리는 늘 이런 말을 한다. “언제 차 한 잔 마시죠.”, “조만간 소주 한 잔 하세.” 그런데 그 ‘언제’와 ‘조만간’의 정확한 기준은 언제이며, 어느 때인가?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립 서비스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 않았던가? 모호한 단어를 남발하면 상대도 그 ‘언제’와 ‘조만간’이라는 단어로 맞받으며 서먹함에서 탈출한다. 말로만 하는 형식적인 인사를 주고받는 이들을 일컬어 그 선배는 우스갯소리로 ‘로만이’라고 부른다.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립 서비스가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기어이 시간을 잡고 의례적인 이야기를 꺼내며 어색한 시간을 갖기도 한다. ‘빈말’은 ‘실속 없이 헛된 말’, ‘속에 없는 말’이다. 말의 무게감이 떨어지고, 진중한 대화가 사라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 스스로가 ‘로만이’ 대열에서 벗어나 보는 것은 어떨까? 말이 공허한 말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에 진정성을 담아 서로에게 신뢰를 주는 연습이 필요하다.

필자도 ‘로만이’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애매모호한 ‘언제’와 ‘조만간’의 기준점을 재설정해야 한다. 세상이 ‘로만이’들로만 넘쳐난다면 정말 삭막하지 않겠는가?

김선균 (라파엘)rn광주가톨릭평화방송 보도제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