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오늘은 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7-11-14 수정일 2017-11-15 발행일 2017-11-19 제 3070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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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라자로를 위해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
 교황, 연중 제33주일을 ‘가난한 이의 날’로
“가난의 원인은 소수의 탐욕과 대중의 무관심”
 물질적 지원 넘어 기도 안에서 형제적 나눔을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1월 ‘자비의 희년’을 폐막하며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지내도록 선포했다. 이에 따라 한국교회도 올해 11월 19일 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지내며 “가난한 이들과의 만남과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교황이 이날을 제정한 이유와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본다.

● 선포 배경과 구체적 실천은

-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자비는 천국의 열쇠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의 제정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끊임없이 강조하는 ‘자비’의 맥락에서 이뤄졌다. 교황은 지난해 11월 13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거행된 ‘소외된 모든 사람들을 위한 희년’에서 이날을 제정한다고 선포했다.

“오늘 전 세계 주교좌 성당과 성지에서 자비의 문이 닫히고 있습니다… 우리 문 앞에 있는 ‘라자로’에게 눈을 감아버리지 않도록 은총을 청합니다.”

이어 교황은 “오늘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제정한다”고 선포했다. 예정된 강론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일주일 뒤인 11월 20일 교황은 자비의 희년 후속 교황 교서 「자비와 비참」(Misericordia et Misera)에 서명하면서,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거행을 다시 한 번 언급하고 “복음의 핵심은 가난”이라고 덧붙였다.

교황은 이미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했고 ‘가난한 이들에게 베푸는 자비가 천국의 열쇠’라고 가르치셨다”고 일러주었다.(「복음의 기쁨」 197항)

- 가난한 이의 부르짖음을 듣고 함께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에서 “여기 가련한 이가 부르짖자 주님께서 들으셨네”(시편 34,7[6])라는 시편 구절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중심으로 이 뜻깊은 날의 의미를 전해준다.

가난한 이의 부르짖음을 하느님께서는 들어주셨고, 그러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는 교회는 궁핍한 이들의 고통에 귀기울이고 그들에게 봉사해야 한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야고보 2,17)임을 초대교회는 잘 알고 있었다.

교황은 특히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들며 “성인은 나병환자들을 구호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과 ‘함께 머물기’로 결심했다”고 설명한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단순한 ‘봉사 활동이나 양심의 평안을 위하여 즉흥적으로 실행하는 선의’에 그치지 않는다. 교황은 이는 진정한 만남과 나눔의 ‘생활 방식’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난한 이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 그들을 만나고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의 구체적인 방식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 탐욕과 무관심을 치유하는 복음적 가난

교황은 현대 세계의 가난이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 원인을 소수의 ‘탐욕’과 대중의 ‘무관심’에서 찾았다.

“고통, 소외, 억압, 폭력, 고문과 옥살이, 전쟁, 자유와 존엄의 박탈, 무지와 문맹, 응급 의료 상황과 일자리 부족, 인신매매와 노예살이, 망명, 극빈과 강제 이주의 모습으로 도전합니다. 가난은 돈과 권력의 권모술수에 짓밟히고 저열한 이익을 위하여 착취되는 남녀노소의 모습에 존재합니다.”(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5항)

이러한 ‘병리 현상’은 ‘복음적 가난의 감각’을 회복함으로써 치유된다. 교황은 복음적 의미에서 가난은 부정적인 결핍의 상태가 아니라, “돈과 경력과 사치를 우리 인생의 목표이자 행복의 조건으로 여기는 데서 벗어나게 해 주는 내적 자세”라고 말한다. 또한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며 은총으로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조건”이고, “물질의 올바른 사용에 가치를 둘 수 있게 해 주고 이기적이고 소유하려 하지 않는 관계를 맺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해 주는 척도”라고 말한다.

- 형제애와 연대로의 초대, 가난한 이를 위한 선택의 요청

교황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선포를 통해 교회 전체와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을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도록 초대한다. 만남의 문화,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와 형제애로 초대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리스도인 개인과 단체, 본당과 교구는 다양한 구체적 활동들을 마련할 수 있다. 복지 증진과 자선 활동, 지역의 가난한 이들과의 만남과 이들을 공동체로 부르는 초대, 공유 경제와 분배 정의 증진 등 소비주의와 물질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문화적 노력, 지역 사회 안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목적 실천 프로그램 실시 등 다양한 방법들이 모두 가능하다. 무엇보다 교황은 세계 가난한 이의 날에 실천할 구체적 계획들의 중심에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질적 구호 활동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의 전부는 아니다. 그들을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수혜자로만 보아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이 날의 목적은 “우리 신자들의 양심에 강력히 호소하여 우리가 가난한 이들과 나눔으로써 복음의 심오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확신”을 키우는 것이다.

●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장 나승구 신부

“함께 비를 맞는 것, 이것이 진정 가난을 살아가는 마음”

“비 맞는 이에게 우산을 씌워주는데 그치지 않고, 함께 비를 맞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 나승구 신부는 가난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도움이 필요한 이들로만 대상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가난’을 그저 골칫거리로 여기는 태도에서 벗어나 가난한 이들과 함께 가난을 살아가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 신부는 “가난,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를 ‘문제’로만 생각했기에 쪽방과 비닐하우스촌을 부수고 결국은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비극이 정당화됐다”고 지적했다.

오늘날 가난의 모습은 한 마디로 ‘명쾌하게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5항)로 다양하다. 나 신부는 ‘삶이 고통스러운 모든 사람들’, 존엄성이 훼손되고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가난한 이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들을 어떻게 만날 것인지 그 실마리를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을 한 치의 편견이나 차별 없이 만나셨고,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만나는 것이 곧 당신의 구원 사업의 핵심이었고, 가난한 이들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나 신부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과 만나고 그들의 고통과 기대, 희망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 방식대로가 아니라 인격적 존중 속에서, 그들의 처지에서 만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나아가 나 신부는 “우리 교회가 과연 가난한 사람들처럼 행복한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눌 만큼 자유로운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난한 이들이 때로는 교회가 자신들을 배제한다고 느끼고 교회 안에 자신들의 자리가 줄어든다고 느낀다면,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세월호 유족을 보듬고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감’의 가치를 일깨웠다. 나 신부는 이러한 교황의 말과 행동처럼 “교회 즉 우리 모두는 스스로 가난해져서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하며, 가난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