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아카데미 일본 나가사키 순례

일본 나가사키 성슬기 기자
입력일 2017-11-14 수정일 2017-11-15 발행일 2017-11-19 제 3070호 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회일치에 노력하는 일본 그리스도인을 만나다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 종교개혁 500주년 맞아 일치 순례 일본 가톨릭교회 박해 역사 돌아봐
적은 신자 수에도 일치 노력하는 일본 개신교·성공회 모습 보면서 순례단 “신앙 동반자로서 의미 새겨”

일본은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교가 가장 먼저 전해진 나라다. 하지만 일본인 중 그리스도교 신자는 0.5% 정도에 불과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일본 나가사키 지역 그리스도교들은 먼저 그리스도인들의 일치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고 이를 위한 실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공식 전담 기구인 한국그리스도교신앙과직제협의회(이하 한국 신앙과직제)는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그 일치의 현장을 찾았다.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아카데미’를 통해 교회 일치를 향한 공감대를 구축해온 그리스도교인들은 이번 순례에서 일본 개신교회, 성공회를 찾아 일치를 위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공유했다. 특히 순례를 통해 나가사키 곳곳에서 250년이 넘는 가혹한 박해와 원폭 피해로 인한 큰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온 선조들의 간절한 신앙을 확인했다. 이번 호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자, 목사, 수녀 등 서로 다른 종교를 지닌 순례단 30여 명이 서로의 종교를 ‘다름’이 아니라 ‘동반자’로 받아들이게 된 여정을 소개한다.

11월 7일 나가사키 일본성공회 성삼일교회를 찾은 순례단이 이곳 주임 마크 타카오 시바모토 신부로부터 지역 그리스도교 일치 노력에 대해서 듣고 있다.

■ 가쿠레 기리시탄의 신앙 근거지

일본에는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가톨릭 신자들이 있었다. ‘숨은 그리스도인’란 의미의 ‘가쿠레 기리시탄’이 바로 그들이다. 일본 그리스도교 역사의 고통과 슬픔을 상징하는 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박해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금교령 이후 250년 동안 기나긴 잠복을 해야 했다.

순례단은 목숨 걸고 신앙을 이어온 가쿠레 기리시탄의 역사를 돌아보며 같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진지하게 각자의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키츠키 박물관과 ‘26성인 기념관’에서는 불상 모습을 한 예수상과 성모상 등을 둘러 보며 그들의 간절한 신앙을 확인했다.

‘카레마츠 신사’에서도 다시 한 번 이들의 간절함을 확인했다. 나가사키 시내 북서쪽 바다에 인접한 산골 마을에 위치한 이곳은 가쿠레 기리시탄이 신사로 위장해 모여 기도한 곳이다. 나가사키시 사적으로도 지정된 이 신사는 박해를 피하기 위해 잘 눈에 띄지 않는 산 속 깊은 곳에 있어 순례단이 찾아 가기에도 쉽지 않았다.

이날 순례단 현지 가이드를 맡은 김명균 목사(재일대한기독교회)는 “나가사키에 신자들의 신앙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것은 가쿠레 기리시탄의 참회기도 덕분일지도 모른다”면서 “그들은 금지령이 해제된 이후에 기쁨을 누리기보다 선조들에 대한 참회의 미사를 지냈다”고 설명했다.

■ 일치를 향한 나가사키 그리스도교 움직임

순례단은 나가사키 시내에 위치한 개신교회 ‘나가사키 교회’에서 ‘개신교의 나가사키 선교’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나가사키 후루마치 교회’ 후지이 키요쿠니 목사가 맡았다.

일본 가톨릭 박해의 역사 속에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관계는 썩 좋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비난하고 종교시설들을 파괴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프랑스 개혁교회에서 파견된 한 개신교 선교사는 나가사키 지역에서 일어나는 순교 상황을 본국에 전하고 금교령을 해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가 보낸 편지에는 가톨릭 교리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가톨릭신자들이 순교하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는 내용도 있었다.

후지이 키요쿠니 목사는 “개신교가 없었다면 일본 가톨릭 박해의 역사가 더 길어졌을 것”이라면서 “가톨릭교회와 사이가 좋지 않던 개신교가 일본 가톨릭 박해 역사를 끝내는 데 도움이 된 것은 하느님께서 놀라운 일을 하신 증거”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나가사키의 그리스도교는 관계가 매우 좋으며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자 수는 적지만 나가사키 지역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하나돼 자발적으로 일치를 위한 기도회를 운영하고 있다. 2년 전 시작한 이 기도회는 매월 셋째 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연다. 기도회는 신자들이 직접 운영하며, 각 종단 지도자들은 역할을 나눠 기도회를 이끌어 간다.

후지이 키요쿠니 목사는 “그리스도교 내에서 서로를 증오하고 파괴한다면 비신자들이 어떻게 우리를 바라볼지 생각해야한다”면서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일치함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평화를 향한 염원으로 하나된 신앙

일본 그리스도교는 평화를 향한 염원도 남다르다. 일본 그리스도인들은 다시는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하나된 마음으로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특히 나가사키 지역 곳곳에서는 형형색색의 종이학 다발을 확인할 수 있다. 원폭 피해자를 위해 기도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상징물이다.

순례단은 일본성공회 성삼일교회 한 켠에서도 종이학 다발을 확인했다. 이 다발에는 당시 원폭으로 죽음을 맞이한 신자 2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일본 성공회 신자 수는 일본 그리스도교에서도 가장 낮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자 수가 계속 줄어들면서 성당을 반으로 나눈 공간에서만 미사를 봉헌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삼일교회 주임 마크 타카오 시바모토 신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리스도교 일치에 동참하고 있다. 그는 “신자들과 함께 원폭 피해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을 잃은 나가사키 지역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면서 “이 지역에 기쁨을 주는 교회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순례단은 또 나가사키대교구 우라카미 주교좌성당과 원폭 자료관, 평화공원 등에서 나가사키 원폭 피해로 인한 고통의 현장을 둘러봤다.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 종교지도자들로 이뤄진 순례단원들은 이번 순례를 통해 서로를 하느님 나라로 가는 여정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일치아카데미 수강자 표병식(힐라리오·서울 대흥동본당)씨는 “이번 일치아카데미 순례를 하며 ‘갈라진 형제’인 개신교와 성공회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이 해소가 됐다”면서 “한 뿌리인 그리스도교가 같은 신앙 안에서 일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그리스도 사랑 안에서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이런 운동이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파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국 신앙과직제 공동사무국장 김태현 목사는 “교리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지만 한 믿음 안에서 공통된 부분을 찾으면서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하나 되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이번 순례가 하느님 뜻을 더 잘 알아가고 그만큼 형제교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는 메신저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순례단이 11월 8일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을 둘러보고 있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 산 속 깊은 곳에 세운 카레마츠 신사.

오카 마사하루 기념 평화자료관에 있는 평화를 기원하는 형형색색의 종이학 다발.

일본 나가사키 성슬기 기자 chiar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