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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철호 신부의 복음묵상] 항상 깨어 주님 나라 준비하라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11-07 수정일 2017-11-07 발행일 2017-11-12 제 3069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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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2주일 (마태 25,1-13)

성경은 종종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을 신랑과 신부가 맺는 혼인계약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리고 메시아가 도래하여 새로운 계약을 맺는 것을 혼인잔치에 비유하곤 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오늘 비유 말씀을 살펴보면 다소 이상한 대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신부는 등장하지 않고, 신부 쪽 들러리인 열 처녀만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이들은 열 처녀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부인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돌보는 주님의 일꾼들을 의미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해석은 오늘 복음에서 봉독한 마태오 복음서 앞 뒤 문맥과 잘 연결됩니다. 왜냐하면 마태 2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충실한 종으로서 동료들을 잘 보살피라고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열 처녀란 신랑이 오실 때를 기다리며 신부인 교회를 위해 잘 봉사해야 할 봉사자들이 됩니다.

하지만 오늘 비유가 깨어서 잘 기다려야 한다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공동체의 봉사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이들이라고 한다면 오늘 복음의 비유 말씀은 혼인 잔치에 초대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비유 말씀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열 처녀의 역할은 신랑이 올 때 그분을 잘 맞아들이도록 등을 켜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름을 잘 챙겨서 신랑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랑이 늦어지자 모두 잠이 듭니다. 신랑은 한밤중에 오면서 늦어지기까지 하는데, 이는 오늘 복음 이전 대목에서도 계속 언급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마태 24,43은 도둑이 밤에 오는데 깨어서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마태 24,48도 “주인이 늦어지는구나”라고 말하며 동료들을 때리고 술꾼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불충실한 종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보니 오늘 비유 말씀은 종말 때 다시 오실 주님께서 늦어지고 계시다고 생각하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잠들어 있다가는 혼인 잔치, 곧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경고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비유에 나오는 불충실하고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가, 아니 준비하였지만 충실히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결국 혼인 잔치에 못 들어가는 이들을 뜻합니다. 마지막 날 그들이 아무리 주인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청하더라도 주인은 그들을 알지 못한다고 선을 그을 것입니다.

불충실하고 어리석은 처녀들과 마찬가지로 슬기로운 처녀들도 주인이 늦어지자 졸다가 잠이 듭니다. 그러던 중 그들이 생각지도 못하던 시간, 곧 한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신랑이 언제 오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등과 함께 기름도 잘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신랑이 언제 오더라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등과 슬기로운 처녀들이 준비한 기름이란 무엇일까요? 등이란 예수님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도록 불림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기름이란 불림을 받은 이로써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충실히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오 복음서의 가르침에 따르면 주님을 깨어 기다리며 주님의 뜻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것 자체가 바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준비해야 할 기름입니다. 이렇게 보니, 오늘 복음은 불림을 받았다고,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항상 깨어서 그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만이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임을 알려주는 이야기입니다.(마태 7,21-23)

오늘 복음의 비유 말씀을 묵상하면서 각자 자신들에게 주어진 등과 그 등을 채울 기름을 잘 준비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날과 시간에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도록 합시다. 그러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보시고도 “나는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