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세상삶은 길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 손애경 수녀

손애경 수녀rn(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 센터장)
입력일 2017-11-07 수정일 2017-11-07 발행일 2017-11-12 제 3069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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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말 부산의 한 주택에서 혼자 살던 A(47)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4~5년 전부터 신장 투석을 받는 등 지병을 앓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혼자 살던 A씨가 1주일 전쯤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 중이었다.

같은 날 오후 부산의 다른 한 주택에서는 B(81)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B씨가 5년 전쯤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나빠진 상태였다고 밝혔다. 또 혼자 살던 B씨가 1주일 전쯤 숨진 것으로 보고 유족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사인을 확인 중이라고 했다. 이처럼 같은 날 같은 지역에서 홀로 외로이 죽음을 맞게 되는 기사를 접하게 됐다. 흔히 고독사라 부르는….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639명이던 무연고 사망자는 2016년 1032명으로 5년 동안 2배 가까이 늘었다. 고독사는 그동안 저소득 만성질환을 가진 홀몸 노인에게만 발생하는 것처럼 여겨져 왔는데, 최근의 고독사는 노인뿐만 아니라 이혼이나 실직, 경제적 파탄 등으로 인해 중·장년층 등 전 연령대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복지재단이 지난해 서울시에서 발생한 총 162건의 고독사를 분석한 결과, 이 중 85%(137건)가 남성 사망자로 나타났으며 이 가운데 50대는 35.8%로 1위를 차지했다.

중년층 이하 연령대의 고독사 위험이 높은 것은 사회적 관계망 공동체가 무너져버린 데 기인한다. 그간 고독사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노년층 1인 가구는 비교적 공동체적 생활문화가 남아있는 농촌지역에 집중돼 있고, 경로당이나 복지시설처럼 정기적으로 타인과 접촉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그에 비해 청년·중년층 1인 가구는 직장이 없으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 외에도 정기적으로 안부를 확인할 통로마저 사라지게 된다. 결국 실업은 물론 일용직 등 출근이 일정치 않은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는 경제적 궁핍이 사회적 고립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는 한국의 사회적 환경은 위기에 처한 일부에게만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시민들의 공동체 자체가 위기에 처한 나라로 분류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자료를 보면 한국은 시민들이 서로를 지지하는 네트워크의 질을 측정하는 ‘공동체’ 부문에서 끝에서 두 번째인 37위를 차지했다. 특히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친구나 지인이 있는지를 묻는 설문에서 그렇다고 응답한 한국인의 비율은 75.8%에 불과해 최하위권이었다. OECD 평균(88%)보다 12%포인트 낮은 수치다. 2년 전의 같은 설문에서 77%가 그렇다고 응답한 것과 비교하면 점차 악화되고 있는 양상도 드러난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고 답한 4명 중 한 명의 한국인은 사회적·심리적 지지를 얻지 못한 채 고독한 삶을 이어가게 되는 셈이다.

삶의 위기를 느끼고 자살을 생각하는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가족들에게 나누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많이 본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함께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원치 않는 마음으로 홀로 그 고통의 짐을 지다 외롭게 삶을 끝내려 한다. 한편으로는 이해 가는 부분도 있지만 아마 이러한 선택은 남은 가족들에게 더 큰 고통을 줄 것이 너무도 분명하다.

지난 2014년 한국을 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는 종교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삶이라는 것은 길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이제 나만이 아닌 우리가 기쁨, 행복뿐 아니라 아픔과 절망도 함께 나누며 비록 폐를 좀 끼치더라도 도움을 청해보자. 공동체 안에서 나누고 들어준다면 조금은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우리 삶의 길이 외롭지 않고 따뜻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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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애경 수녀rn(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자살예방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