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염철호 신부의 복음생각] 낮추고 섬기는 사람 돼야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
입력일 2017-10-31 수정일 2017-10-31 발행일 2017-11-05 제 3068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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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일(마태 23,1-12)

유다인들은 유배를 마친 뒤 성전을 재건하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율법을 지키며 충실히 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열정은 사라지고 백성들을 올바로 이끌어야 했던 사제들마저 나태함에 빠져 주님의 길에서 멀어지자 말라키 예언자는 쓴소리를 전하는데 오늘 제1독서가 바로 그 내용입니다. 예언자는 사제들에게 “너희가 말을 듣지 않고 명심하여 내 이름에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저주를 내리겠다”(말라 2,2)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사제들은 백성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야 했지만 주님의 길에서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법을 만들어 많은 이를 걸려 넘어지게 했습니다. 또한 법을 공평하게 적용하지 않으면서 분란만 일으켰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기다리는 것은 온 백성 앞에서 받게 될 멸시와 천대입니다. 오늘 독서에 이어 예언자는 주님의 날이 닥치리라는 것을 예언합니다. 그러면서 그 날이 오기 전 엘리야 예언자가 와서 모두의 마음을 하느님께 돌릴 것이라고도 예언합니다.(말라 3,22-24) 이 예언들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라키 예언서를 구약성경 제일 마지막 부분, 곧 신약성경 바로 앞에 배치해 둡니다.

말라키 예언서에 이어 나오는 신약성경 첫 책이 바로 오늘 복음으로 봉독되는 마태오 복음서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비판합니다. 예수님께서 비판하신 내용은 오늘 제1독서에서 말라키가 사제들을 비판한 내용과 잘 연결됩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이지만 성구갑 속에 들어있는 주님의 계명은 지키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하느님의 법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말라키가 비판하던 사제들처럼 자신들의 법, 곧 무겁고 힘겨운 짐을 만들어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올려놓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마치 하느님의 법을 아는 이들인 듯 존경받으려 합니다. 그들은 잔칫집에서 윗자리를, 회당에서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님뿐이십니다. 하느님의 법을 알려주고 실천하시는 분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제1독서에서 말라키 예언자는 하느님을 두고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바로 그 내용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이며, 우리는 모두 한 분 아버지의 자녀들이자 형제들입니다. 하지만 마태오 복음서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참으로 그분의 자녀요 예수님의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이들뿐이라고 말입니다.(마태 12,50) 이렇게 보니 말만 하고 지키지 않는 사제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오늘 제2독서의 사도 바오로도 자신들이 말로만이 아니라, 수고와 고생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했다고 말합니다. 애정을 가지고 자신들을 기꺼이 내어놓은 그들의 모습에서 그들이 전하는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바오로와 동료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이 전하는 말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1테살 2,13)

물론,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도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사도 바오로가 다른 점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법을 따르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이들은 오늘 복음이 이야기하듯이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과 이웃을 섬깁니다. 하지만 자신의 법을 따르는 이는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자신을 높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 번 하느님과 이웃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봉사하며 살기로 다짐합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형제라 불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만이 주님의 날에 저주받지 않을 것입니다.

염철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신학 교수)rn부산교구 소속으로 2002년 사제품을 받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