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방주의 창] 돈에 매몰된 대한민국의 윤리와 미래 / 양기석 신부

양기석 신부rn(수원교구 송전본당 주임·수원교구 환경위원회 위원장)
입력일 2017-10-31 수정일 2017-10-31 발행일 2017-11-05 제 3068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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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에 참여한 시민참여단의 59.5%가 건설재개를 권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53.2%가 향후 핵발전소의 축소를 요청했습니다. 정부와 상당수의 언론은 절묘하고 지혜로운 선택이었다고 찬양일색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자기모순적인 결론입니까? ‘핵발전소는 위험하니 미래를 위해서 줄여야 마땅하지만, 당장의 돈을 위해서라면 더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도로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신울진 1, 2호기, 신고리 4호기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공약 중 공론화 대상으로 언급했지만, 아예 백지화와 관련한 공론화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리고 백지화 공약 대상이었던 신고리 5, 6호기 건설이 재개되면서, 현 정부 들어서 신규 핵발전소 5기가 늘어나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 건설 중지의 탈핵정책 기조는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왜 대통령이 된 사람들의 언어는 이렇게 이해하기 어렵습니까? 아무리 좋게 해석한다 하더라도, 탈핵을 이야기하면서 핵발전소는 포기할 용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8차수급전력기본계획 워킹그룹의 보고 자료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가 신고리 5, 6호기를 비롯한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명분으로 삼았던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전력수요가 실제로는 10.1GW(기가와트)가 과다 예측됐습니다. 이는 신규 핵발전소 8~10기 분량입니다. 애초에 신고리 5, 6호기는 물론이고, 거의 완공단계에 이른 신고리 4호기, 신울진 1, 2호기 또한 건설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핵산업계와 이와 관련된 이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자 문재인 정부는 원래의 약속을 뒤집고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을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핵산업계와 시민단체간의 논쟁으로 제한했습니다. 시민참여단은 이런 구조 속에서 매몰비용과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일어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안전신화에 매몰돼 59.5%가 건설재개를 선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고준위핵폐기물에 대한 공론화를 예고했습니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과 고준위핵폐기물처리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떼어낼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공론화과정에서는 핵폐기물문제는 별로 비중 있게 다루지 않은 듯합니다. 미국의 법원에서는 핵폐기물처리장건설비용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시키는 판결을 내렸었다는 보도가 있기도 했습니다.

흔히들 핵발전소를 ‘화장실 없는 맨션’이라고 부릅니다.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나지 않는다 해도 사용 후 핵연료인 고준위핵폐기물을 최종적인 방식으로 처리한 경험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후세대에 기술이 발달하면 이러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 핵산업계의 안이한 생각인 것 같습니다.

사용 후 핵연료만이 고준위핵폐기물이 아닙니다. 핵발전소건물 자체도 핵폐기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이라는 ‘기술적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하십니다.

‘쇼생크 탈출’ 중 장기수 레드가 “이 철책은 웃기지. 처음에는 싫지만 차츰 익숙해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벗어날 수가 없어. 그게 ‘길들여진다’는 거야”라고 말합니다. 우리 사회는 돈에 절망하면서도, 돈이라면 생명까지도 포기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재개는 생명이 아니라 돈을 선택해 온 우리 사회의 길들여진 모습입니다. 같은 영화에서 주인공 앤디는 “공포는 당신을 죄수로 감옥에 가두고, 희망은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 거예요”라고 합니다. 신고리 5, 6호기를 비롯한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시작으로 한 탈핵사회로의 전환은 우리 사회의 희망입니다. 이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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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석 신부rn(수원교구 송전본당 주임·수원교구 환경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