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위령성월에 만난 사람] 가톨릭대 간호대학 호스피스연구소장 용진선 수녀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7-10-31 수정일 2017-11-01 발행일 2017-11-05 제 3068호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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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마지막 시기 ‘잘 살도록’ 돕는 영적돌봄은 필수”
‘마지막까지 존귀한 인간 생명’ 이해하고 평안하게 임종 맞도록 전인적 도움 주는 호스피스 확대·발전시키는 일 매우 중요
죽음 앞두고 있을 때 영적 요구 가장 커 
‘영적돌봄’ 전문가 양성 체계 마련돼야

1965년 강릉 갈바리 호스피스의원의 활동으로 시작된 한국의 ‘호스피스·완화 의료’는 2015년 7월 국민건강보험이 처음 적용되면서 저변을 넓혔다. 그런 흐름에서 지난 8월 시행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호스피스ㆍ연명의료결정법)의 호스피스완화의료 관련법은 (연명의료결정 관련법은 2018년 2월부터 시행)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보다 큰 변화와 개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물론 교회 내에서도 여전히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것이다’는 식의 편견으로 ‘호스피스’를 거북해 하는 이들이 많다. 2015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트 유니트’(Economist Intelligent Unit)가 발표한 ‘죽음의 질(質) 평가’의 부제는 ‘세계 완화의료의 순위’였다. 삶의 남은 시간을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며 존엄한 죽음을 맞는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중요성을 볼 수 있는 한 단면이다. 교회에서도 ‘생명존중과 전인적 돌봄’ 정신의 실천이라는 면에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권장하고 있다. 영적돌봄 전문가로 알려진 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 호스피스연구소장 용진선 수녀를 만나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의미와 호스피스 활동의 골자라 할 수 있는 영적돌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용 수녀는 교황청 생명학술원에 신설된 완화의료 국제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용진선 수녀는 “생의 마지막 시기를 ‘잘 살 수 있도록’ 돕고,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보존하게 해주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발전에 힘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부터 호스피스연구소 및 세계보건기구 협력센터(WHO Collaborating Center) 책임을 맡고 있는 용진선 수녀(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 교수·영원한도움의성모수도회)는 “호스피스완화의료법이 마련됐다는 것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발전에 획을 긋는 일” 이라고 했다.

그러나 법이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 특히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이 잘 운용되기 위해서는 ‘인간 생명은 마지막까지 존귀하다’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커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의료진과 환자 및 가족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용 수녀는 “계속적인 홍보와 교육, 숙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황청 생명학술원의 완화의료자문위원회 신설도 그만큼 보편교회 안에서 지구촌에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의식이 커졌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법률 시행으로 가정호스피스가 좀 더 확대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가정호스피스는 ‘거주하던 공간에서 가장 편하게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2012년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가 조사한 결과에서도 조사에 참여한 말기 및 진행 암환자 465명 중 75.9%가 가정에서 치료를 받고 싶어 했다. 용 수녀는 “그런 부분에서 가정간호를 하고 있는 지역 본당 등에서도 봉사자 및 호스피스 전문인력 양성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간 가톨릭교회 의료사업 안에서 호스피스 활동은 그 사명인 진리·사랑·봉사 정신을 구현하며 사회에 빛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한 용 수녀는 “그 빛이 우리 사회 전반에 고루 잘 비추어지게 돼서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잘 정착되도록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호스피스 발전의 선두에 섰던 가톨릭교회 노력에 대해서는 “의료보험 체계에 들어가기 전에도, 가톨릭 의료계는 병원 경영의 적자를 감수하면서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며 꾸준하게 인간 존엄성을 고취시키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호스피스 돌봄을 구현했다”고 전했다.

용 수녀는 앞으로 교회가 호스피스 활동의 방향을 활성화해 나가는 데 있어 큰 흐름으로 지켜봐야 할 부분을 ‘영적돌봄’으로 제시했다.

“호스피스 활동은 임종기 환자가 생의 남은 시간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유지하고 평안하게 임종을 맞도록 전인적(신체적 심리사회적 영적)으로 환자를 돕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에 응답하는 영적돌봄은 필수적입니다. 호스피스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해외의료계 경우 2000년 이후 ‘영적돌봄이 환자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국에서는 아직 영적돌봄이라는 주제가 잘 인식돼 있지 못한 상태”라고 아쉬움을 표한 용 수녀는 “영적돌봄이 호스피스 분야에서 발전하려면 미국처럼 전문자격증을 지닌 원목자들이 영적돌봄 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원목자 양성 표준프로그램이 개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말로 된 영적돌봄 관련 저서도 필수다. 그는 이를 위해 2015년부터 보건의료 영성을 다룬 옥스퍼드 교과서 ‘헬스케어 영성’을 총 5권 시리즈로 나눠 번역 출간 작업 중이다. 현재 제3권을 제외한 나머지 네 권이 발간됐다.

국내에서 영적돌봄을 다루고 있는 기관은 가톨릭대학교 간호대학이 유일무이하다. 특히 호스피스연구소는 정기적으로 국제영성학술대회를 열어 이를 확산시키고 있다. 국제적으로는 WHO(세계보건기구)와 협력하여 영적돌봄 지침서 제작을 기획하고 있다.

“인간 생애 전체에서 영적 요구가 가장 커지는 순간이 바로 죽음에 직면해 있을 때일 것입니다. 일생동안 표현해 보지 못한 응어리 아픔 슬픔 등을 영적돌봄을 제공하는 이에게 진솔하게 털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살아야 좋은 죽음을 맞는다는 진리를 느낀다”고 말한 용 수녀는 “죽음은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생각을 놓지 말아야 하고, 그것은 삶에 더 충실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조언했다.

요즘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세계보건기구 협력센터(WHO Collaborating Center)장으로서 저개발국 호스피스·완화의료 국제교육프로그램의 개발과 제공, 아시아지역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영적돌봄 가이드라인 마련을 계획하고 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시기를 ‘잘 살 수 있도록’ 돕고,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보존하게 해주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발전에 힘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령성월을 맞아 신앙인들에게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죽음에 직면했을 때, ‘어떤 치료와 돌봄을 받으며 생을 마무리하고 싶은가’ 숙고해 본다면 호스피스가 얼마나 중요하고 또 성장 발전해야 하는지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용 수녀는 “생명은 하느님 선물이며, 마지막 순간에 다른 이들에게 모든 것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도 존귀하고 가치 있게 대우받고 돌봄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저는 그런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호스피스를 발전시키고 홍보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 ‘호스피스’ 궁금증 바로알기

- 호스피스는 죽으러 가는 곳이다?

: 남은 시간을 보다 의미 있고 평화롭게, 삶을 온전하게 잘 살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다. 통증 등 증상에 대한 치료를 하고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전인적 돌봄을 받는 장소다. 2017년 현재 전국 81개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이 보건복지부 지정을 받아 운영 중이다.

- 말기암 환자만 이용한다?

: 지난 8월 4일 호스피스·완화의료법이 시행되면서 호스피스 대상자가 기존 말기암과 함께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까지 확대됐다.

- 환자에게 아무런 치료를 해주지 않는다?

: 연명치료를 제외한 환자가 고통받는 통증, 구토, 호흡곤란, 복수 등 여러 증상을 적극적으로 치료한다. 통증조절, 증상조절, 음악요법, 미술요법, 원예요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 입원을 해야 한다?

: 입원형, 가정형, 자문형 호스피스로 확대 시행됐다. 입원형은 호스피스 전용 병동에서 지내는 것이며, 가정형은 환자 자신의 집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자문형은 호스피스 팀의 자문을 받아서 일반 병동의 환자들이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 입원형 호스피스는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없다?

: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지내면서 다양한 돌봄을 받을 수 있다. 가족 휴식 공간도 별도로 제공된다. 가족들은 환자와 함께 있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에 환자는 가족과 함께하는 임종을 맞을 수 있다.

- 자원봉사자 역할은?

: 환자에 대한 모든 서비스는 호스피스 전문 간호사의 의료적인 감독 아래 이뤄진다. 자원봉사자의 역할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나 간호사를 보조하여 다양한 활동(목욕보조, 발마사지, 기도, 성가, 상담 등)으로 가족과 환자를 돕는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