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묵주기도성월 특집] 과달루페 성모 성지를 가다

멕시코 과달루페 성지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10-10 수정일 2017-10-11 발행일 2017-10-15 제 3065호 9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쉼없이 이어지는 묵주기도… 성모님의 자비 닮고 싶다 청하네

테페약 산 위에 세워진 과달루페 성모를 경배하는 멕시코 원주민 성상.

묵주기도는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에 따른 신비를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다.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사랑하는 이 기도는 성모 마리아에게 장미 꽃다발을 봉헌하는 기도로도 잘 알려져 있다.

묵주기도성월을 맞아 교회가 공인한 첫 성모발현지인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 성지를 찾았다.

■ 전 국민이 과달루페노

9월 28일 멕시코시티국제공항에서 택시에 올랐다. 과달루페 성지로 가자고 하자 택시기사는 “바실리카(대성당)!”라 외치며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스페인어를 하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택시기사는 스페인어로 열성적으로 무언가를 설명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설명 중에도 성당을 지나칠 때마다 빠짐없이 성호를 긋는 그가 얼마나 과달루페의 성모를 사랑하는지 충분히 느껴졌다.

멕시코에서 이렇게 과달루페의 성모에 열성적인 사람을 만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오죽하면 멕시코의 가톨릭신자는 90%정도지만, ‘과달루페노’(Guadalupeno), 즉 과달루페의 성모를 사랑하는 이들은 100%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1531년 과달루페의 성모 발현은 당시 멕시코인 800만 명이 가톨릭으로 개종하도록 이끌었고, 지금도 여전히 멕시코인들의 신앙을 지켜주고 있다.

대부분의 성모발현은 성모가 발현한 지명을 대표적인 이름으로 사용하지만, 과달루페는 사실 성모가 발현한 지명은 아니다. 멕시코시티 테페약 산에서 발현한 성모는 자신을 ‘과달루페(Guadalupe)의 영원하신 동정 마리아’로 부르길 원했다. ‘과달루페’는 ‘뱀을 물리친 여인’이라는 뜻이다.

공항에서 30분가량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자 멀리 고풍스런 성당이 보였다. 과달루페 성모 성지의 옛 성당이다.

과달루페 성모 성지 촛불봉헌대에서 기도하는 순례자들.

■ 사랑과 자비의 증거

“너희가 나의 사랑과 자비, 보호를 증거하기 위해 이곳에 성당에 세우길 바란다.”

1531년 12월 9일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테페약 산을 넘던 후안 디에고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이 나타났다. 멕시코 원주민의 모습을 한 여인은 당시 멕시코인들이 사용하던 토착어인 나후아틀어로 “나는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믿으며 내 도움을 요청하는 지상의 모든 백성의 자비로운 어머니”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주교를 찾아가 자신이 나타난 장소에 성당을 세우길 요청했다. 디에고는 주교관을 찾아가 스페인 출신의 후안 데 수마라가 주교에게 전했지만 주교는 디에고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증표를 요구했다.

테페약 산에 다시 발현한 성모는 디에고에게 “자신과 처음 만났던 언덕에서 장미꽃을 모아오라”고 명하고, 디에고가 자신의 틸마(멕시코 전통 망토)에 장미를 모아오자 장미를 가지런히 다시 놓았다. 성모가 발현한 테페약 산 정상은 꽃이 자랄 수 없는 바위 언덕이었을 뿐 아니라 디에고가 성모를 만난 시기는 장미가 피지 않는 겨울이었다. 또한 디에고가 모아온 장미는 멕시코에 피는 장미가 아니라 주교의 고향인 스페인 카스티야산 장미였다.

디에고는 다시 주교를 찾아가 “성모님이 보내신 꽃”이라면서 틸마에 담아온 장미꽃을 펼쳐보였다. 그러자 장미꽃들이 바닥에 폭포처럼 흩뿌려지면서 디에고의 틸마에 성모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를 본 주교는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성모의 전언을 믿지 않은 자신을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바쳤다.

과달루페 성모의 발현은 교회가 인준한 첫 성모발현이라는 점에서도 주목할만 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성모가 현지 원주민의 모습으로 발현했다는 점이다.

멕시코 원주민들은 성모가 발현하기 10년 전 멕시코를 점령한 스페인 군인들의 야만적 행동에 충격을 받고 그들과 함께 온 선교사들이 전하는 신앙을 받아들이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성모발현 이후 전 멕시코의 원주민들이 토속신앙을 버리고 세례를 청했고, 죄인들은 회개해 고해성사를 청하는 줄을 지었다.

또한 과달루페 성모가 허리에 맨 검은 띠는 임신한 여성을 나타내는 원주민들의 전통이다. 이에 많은 임신부와 갓난아기를 동행한 가족들이 생명을 수호하는 성모의 전구를 청하기 위해 성지를 찾고 있다.

테페약 산 위에서 바라본 멕시코시티 전경.

■ 성모 형상 담긴 틸마 자체도 신비

언덕 위에서는 성지의 두 바실리카가 보였다. 노란지붕의 고풍스러운 바실리카는 1709년 세워졌다. 하지만 현재 지반 침하로 건물이 기울어져 사용하지 않고 1976년 옛 성당 옆에 1만 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 바실리카를 지어 성모의 모습이 담긴 틸마를 보관하고 있다.

틸마에 담긴 성모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 서둘러 새 바실리카로 걸음을 옮겼다. 틸마는 제대 뒤편에 보관돼 있어 미사를 드리는 신자들이 제대와 함께 바라볼 수 있었다. 아울러 성지는 신자들이 틸마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제대 뒤에 공간을 만들고 무빙워크를 설치했다. 검은 머리에 갈색 피부. 멕시코 원주민과 같은 모습을 한 성모는 온화한 미소로 순례자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틸마에 담긴 성모의 형상 자체도 신비롭지만, 이 틸마 자체도 현대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신비를 담고 있다. 틸마의 재료인 ‘아야테’라는 직물은 일반적으로 20년 이상 보존이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5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특별한 보존처리 없이 보관되고 있는데도 직물의 상태와 성화의 색감에 변화가 없다. 심지어 1921년 멕시코 공산당원들이 이 성화를 없애려고 다이너마이트를 폭파시켰을 때도 제대는 산산조각 났지만 성화는 무사했다고 한다.

과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그림에 붓질의 흔적이 없을 뿐 아니라 안료 역시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것”이었으며, 우주광학 장비를 사용해 틸마에 새겨진 성모의 눈을 2500배 확대하자 성모의 동공에 비친 사람들의 그림자도 발견할 수 있었다.

과달루페 성모발현과 함께 전파된 강한 성모신심은 전 세계에서 찾아오는 신자들의 끊이지 않는 묵주기도로 이어지고 있다. 신자들의 묵주기도와 함께 울려 퍼지는 과달루페 성모의 메시지는 다름 아닌 자비의 실천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2월 12일 바티칸 성베드로대성당에서 봉헌한 과달루페 성모 축일 미사 강론에서 “(과달루페) 성모님은 고통 중의 백성을 돕고 동반하기 위해 테페약으로 달려가셨다”면서 “성모님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도 그분처럼 주님의 시선과 자비로운 마음, 그리고 행동으로 다른 이들을 만나러 밖으로 나가도록 초대됐음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과달루페 성모 성지 바실리카에 보관된 틸마(왼쪽)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순례자들.

◆ 과달루페 성모 성지 여행 TIP

우측 시계탑쪽 길따라 테페약 산으로

바실리카 남서쪽에는 ‘축복소’ 자리해

과달루페 성모 성지는 멕시코 멕시코시티국제공항에서 도로를 따라 약 10㎞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지난 7월 서울(인천)-멕시코시티 직항편이 신설돼 기존에 비해 이동시간도 매우 짧아졌다.

공항에서는 전철로도 갈 수 있지만, 치안이 좋지 않아 현지 사정에 밝지 않으면 추천하지 않는다. 택시로 이동하면 약 20분가량 소요되며, 편도 200~300페소(한화 약 1~2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성지 입구에서 우측 시계탑쪽 길을 이용하면 경당들을 둘러보고 비교적 완만한 길을 따라 테페약 산에 오를 수 있다. 반대편 길로 내려오면 박물관과 바실리카, 촛불봉헌대 등이 있다. 바실리카 남서쪽에는 사제가 순례자에게 성수를 뿌려 강복해주는 ‘축복소’가 자리하고 있어, 순례를 마친 후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멕시코 과달루페 성지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