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우리교구 이곳저곳] (26) 구산성지

이승훈 기자
입력일 2017-10-10 수정일 2017-10-10 발행일 2017-10-15 제 3065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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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여 년 지켜온 김성우 성인 묘역과 정신
주변 재개발에도 성지 옛 모습 유지 
가마터 등 통해 신앙 선조 삶 전해

구산성지 김성우 성인상 뒤로 묵주기도를 바치는 순례자들이 보인다.

도시재개발 속에서도 교우촌 신자들의 노력으로 김성우(안토니오) 성인의 묘와 그 정신을 지켜온 성지가 있다. 바로 구산성지다.

불과 6년여 전 하남의 미사리를 방문한 이라면 ‘상전벽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논밭도 집도, 나무도, 길조차도 하나 남은 것 없이 변해버렸다.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직선으로 뻗은 길을 따라 구산성지를 찾았다.

옹기가마터.

잘 닦인 길을 따라 들어가니 이윽고 이 지역에서 유일하게 낯익은 모습이 보인다. 둥근 언덕 형태를 한 성지입구다.

입구에 들어서니 이곳이 재개발된 지역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예전의 모습을 간직한 성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김성우 성인과 순교자들의 묘역도, 성지 성당도, 옹기가마터도 모두 잘 보존돼 있다.

성지가 보존한 것은 단순히 ‘옛 것’이 아니다. 이 지역에 담긴 신앙선조들의 정신을 지켜낸 것이다.

구산은 김성우 성인이 교우촌으로 변모시킨 마을이다.

김성우 성인과 순교자 묘역.

김성우 성인은 양반의 자제로 존경받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주교 교리를 접하면서 세례를 받고 선교에도 열심히 나섰다. 후에는 구산의 초대회장으로 마을의 모든 이들에게 신앙을 전했다. 성인의 선교 덕분에 마을은 교우촌으로 변했고, 이 교우촌에서 성인을 비롯한 9명의 순교자가 났다.

교우촌의 신자들은 박해 속에서도 전쟁 속에서도 대대로 순교자들의 묘역을 지켜왔다. 급격한 도시화와 이농현상 속에서도 신자들은 전통적인 교우촌의 모습을 200여 년 간 간직해왔고, 김성우 성인의 삶과 신앙을 널리 전하기 위해 성지를 조성했다. 재개발로 인해 더 이상 교우촌의 자취는 찾을 수 없지만, 그 정신은 성지에 남아 이어지고 있다.

성지에 조성된 묵주기도의 길.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성지 곳곳에서 신자들의 기도소리가 들려왔다. 성지 내에 조성된 묵주기도의 길을 따라 신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었다. 신앙선조들이 순교의 길을 가면서도 묵주기도를 바쳤던 것처럼 구산성지는 순교신심만이 아니라 성모신심을 고양하는데도 좋은 성지다.

성지 입구에 세워진 성모상은 구산성당 초대 신부이자 깊은 성모신심을 가지고 있던 고(故) 길홍균 신부가 제작의뢰한 성모상이다. 길 신부는 꿈속에서 만난 성모의 모습을 당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이었던 김세중(프란치스코) 작가에게 의뢰해 이 성모상을 제작했다. 왼손에는 성자를, 오른손에는 지시봉을 든 이 성모상은 ‘우리의 도움이신 성모마리아상’으로 명명됐다. 성지를 순례하는 저마다 잠시 이 성모상 앞에 머물며 가정과 인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성모상 왼쪽으로는 묵주기도의 길이 이어진다. 묵주기도의 길은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하얀 도자기 구슬과 성모송을 바치는 파란 도자기 구슬로 조성돼 있다. 각 구슬은 선조들이 만들던 옹기 형상 위에 올려 선조들의 삶도 함께 묵상할 수 있게 해준다.

성지 내에는 ‘신앙선조 영성마을’ 비석도 세워져 있다. 성지가 앞으로 조성해나갈 ‘신앙선조 영성마을’에서는 보다 많은 신자들이 신앙선조들의 영성을 체득할 수 있도록 신앙선조의 삶과 신앙을 느끼고 배우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